SPECIAL 03

의자를 생각하다, DDP 소장품 탐색

김신 디자인컬럼니스트

2019년 5월 25일 2:00PM
서울 중구 을지로 281
오토 체어_피터 카프 Oto Chair_Peter Karpf (사진_서울디자인재단 제공)
팬톤_베르너 팬톤 Panton Chair_Verner Panton (사진_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일시: 5월 25일 오후 2시

집결지: DDP 인포 센터(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 방향)


글자만큼이나 빈번하게 만나고 사용하는 의자는 평소에 좀처럼 생각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이다. 반면에 의자만큼 자기를 봐달라고 소리 치는 사물도 많지 않다. 가구 중에서 의자는 가장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DDP는 매우 기능적인 의자부터 조각 같은 의자, 장인의 정성과 땀이 들어간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자를 컬렉션하고 있다. 의자는 반드시 공간 속에 속해서 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DDP의 의자들을 성격에 따라 분류해서 그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01 의자는 환대한다
의자는 사람의 몸이 앉는 물리적인 형태의 가구이기 이전에 ‘자리’라는 추상적인 의미를 갖는다. 의자란 기본적으로 거기에 앉는 사람을 환대해주는 존재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그를 반길 때 우리는 반드시 의자를 내어주고, 반면에 누군가를 배제하려고 하면 먼저 그의 자리를 없앤다. 그에게 의자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의자 앉기 게임은 자리 차지하기와 배제하기의 의미를 갖는 의자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02 의자는 사람의 몸을 닮았다
의자는 걸터앉을 수 있는 스툴부터 몸을 완전히 감싸는 윙백 체어에 이르기까지 신체와 어느 정도 닮았느냐에 따라 기능별로 분류할 수 있다. 다리, 좌석, 등받이, 팔걸이, 목 받침까지 구비된 의자는 인간의 신체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등받이가 없는 스툴은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비해 간편하지만 기댈 수 없으므로 그 사람을 덜 대우해주는 것 같다.

03 앉는 자세에 따른 다른 기능의 의자들
사람이 앉기 시작하면서부터 앉는 자세가 굉장히 다양해졌다. 앉는 자세는 단지 편안함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앉는 자세는 권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넓은 등받이와 높은 팔걸이를 가진 의자는 그곳에 앉은 사람을 거만하게 보이게 만들며, 그런 의자에는 대개 권력자가 앉는다. 라운지 체어는 몸을 깊숙이 눕도록 만들고, 세이즈 롱(chaise longue)은 긴장을 완전히 풀어주고 즐거운 낮잠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긴 벤치형 스툴은 비록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곳에 앉은 사람들을 친밀하게 만들어주며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04 재료와 기술 혁신의 의자들
의자의 창의성은 당대 재료와 기술의 발전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각 시대별로 혁신적인 의자의 탄생은 새로운 재료/기술의 탄생과 함께한다. 강철관, 2차원 성형합판, 3차원 성형합판, 섬유유리, 플라스틱, 펠리클 등 재료가 곧 시대를 대변해왔다.

05 구조의 다양성과 창의성, 디자이너들의 태도
의자의 원형은 다리 4개가 상판을 받치고 있는 구조다. 그것은 집의 기본 구조와도 닮았다. 또한 테이블의 구조와도 같다. 하지만 상판이 넓은 큰 테이블과 달리 의자의 상판은 비교적 작기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에게 구조의 혁신에 대한 동기가 되었다. 한 개의 다리, 또는 다리 없는 받침대만으로 이루어진 의자 등 다양하다.

06 모더니즘 vs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의 의자들은 대체로 기능주의를 따르려고 노력한다. 기능은 편리하게 앉는 기능뿐만 아니라 생산, 이동, 관리 모든 면에서 기능적이어야 한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를 갖게 되고, 이것은 엄격함을 낳는다. 반면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반하므로 그러한 엄격함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한다. 모더니즘 의자도 개성을 추구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의자들은 더욱 강한 개성을 추구하고 표현의 대상으로 의자를 생각한다.

글 _ 김신 / 사진 _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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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터 1층 ─ 아너스룸에서 Q&A 후 엔딩

사진_김신 제공
김신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 기자 및 편집장으로 있으며 199회의 잡지 기획과 제작에 참여했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있었다. 2014년부터 독립해 프리랜스 칼럼니스트로 여러 신문과 잡지, 온라인 미디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동시에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론, 디자인사, 디자인 비평, 이미지 기호학, 서양미술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디자인 저술 활동과 디자인 강의를 통해 디자인 이론의 대중화에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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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개관5주년 기념 다시 보는 하디드의 공간, DDP, 서울디자인재단+오픈하우스서울 DDP 개관 5주년을 맞아 서울디자인재단과 오픈하우스서울이 5월 스페셜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미처 알지 못한 DDP의 오늘을 탐색하기 위해 준비한 스페셜 프로그램이 2019년 5월 24일, 25일 이틀간 DDP를 가로지르며 열립니다.  비정형 곡면이 만들어내는 유려한 공간미, 자하 하디드의 유작, 강력한 어반 스케일이 구축한 장소. 도시에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낯설기만 했던 DDP는 서울의 일상에 어떤 풍경으로 자리 잡았을까? 개관 5주년을 맞아 서울디자인재단과 오픈하우스서울은 도시에 이식된 DDP의 풍경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혹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DDP의 곳곳을 탐색해보는 스페셜 투어다. 시민들이 사랑한 DDP의 공간은 어떤 곳인지, 젊은 건축가가 해석한 자하 하디드 공간의 매력은 무엇인지, 동대문운동장과 한양성곽, 이간수문을 넘어 이 지역의 변화와 내력은 무엇인지,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그 장소에 새롭게 축적된 기억을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이간수문부터 야구의 성지였던 동대문운동장의 기억,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자하 하디드의 DDP까지, 120년의 세월 동안 변화를 축적해 온 동대문 일대의 흔적을 찾아 DDP를 둘러싼 지역의 내력을 되짚어본다. 또 한국의 젊은 건축가의 시선으로 재발견한 자하 하디드의 공간을 돌아보며, 초기 안에서 지형을 따라 올라갈 수 있었던 DDP의 지붕, 그리고 거대한 DDP의 무주 공간을 가능하게 하는 스페이스 프레임, 육중한 설비 기계로 가득찬 기계실에서 풍도의 벙커까지, DDP의 백도어를 돌아보는 오픈하우스까지 4개의 스페셜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시민들이 사랑한 DDP의 공간과 미처 발길이 닿을 수 없었던 이면까지 들여다 봄으로써 DDP를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새로운 동선을 찾아내 볼 예정이다. 지난 5년, DDP가 우리에게 어떻게 자리잡았는지, 주변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반 스케일의 공간이 주는 강렬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다. 이와 함께,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윤현준 건축가, 하지훈 가구디자이너의 인터뷰를 통해, DDP가 갖는 의미와 앞으로 생각해볼 이야기를 나눈다.  글 _ OHS  포스터 디자인 _ 워크룸 
Special Interview 한국 패션을 상징하는 아이코닉, DDP,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서울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DDP,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DDP가 우리에게 어떤 장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DDP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시는지요? 첫인상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기억이 나요. 마치 미래 도시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딘지 모르게 매우 유기적인 느낌이 많이 나서 공간감을 잃은 것 같기도 했고, 방향 감각을 잃은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런 느낌이 나빴다기보다 오히려 나를 자하 하디드만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것 같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 기억해요. DDP가 처음 패션산업의 중심지인 동대문 일대에 들어선다고 했을 때, 패션계에서는 혹은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처음에는 저도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었어요. 건축이 자기만 돋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환경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그런데 사실 DDP라는 공간 자체가 주변 환경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만들어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살짝 의아했었죠.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것도 건축가의 의도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어요. 왜냐하면 DDP는 매우 오랫동안 정체돼있던 동네에 변화라는 제안을 한 건데, 만약에 이런 새로운 공간이 없었다면 동대문이라는 동네, 상권 자체에 큰 변화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DDP가 동대문 일대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계기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 같아요. DDP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패션 행사가 열립니다. 한국 패션계에서 DDP의 위치, 위상은 어떤가요? 지난 5년간 패션계에서 DDP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시는지요? 특히 서울패션위크 기간에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방문하죠. 특히 외국 분들은 그 도시의 아이코닉한 건축물을 도시의 매력 포인트로 삼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외국인들은 DDP가 가진 상징성과 그 가치를 좋게 평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다가 DDP라는 매우 아이코닉한 건축물에서 패션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로서 국내 패션계에 집중할 수 있는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해요. DDP 같은 멋진 공간에서 행사할 수 있다는 거에  대해서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DDP 가운데 좋아하는 공간이 있으신가요? DDP는 내부도 좋지만, 저는 건물 밖의 전체적인 모습을 좋아해요. 건물을 바라보며 산보하듯이 걸어가다 보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건물 모양과 스카이라인이 계속해서 바뀌어요. 건축물은 고정되어 있지만, 실제 걸으면서 봤을 때는 건물이 움직이는 것 같은 굉장히 유기적인 느낌을 줘요.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어디에서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똑같이 보이는 부분이 전혀 없다는 점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요새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주요 화두입니다. 앞으로 DDP는 그 자체로서 어떤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패션산업과 연계해서 기대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서울패션위크 행사가 DDP에서 지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많은 외국인도 서울의 패션을 DDP와 연결 지어 생각할 정도로 국내 패션계에서 아이코닉한 건물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자하 하디드의 건축이 그런 상징적인 이미지 자체를 패션에 심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DDP는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요? 사실은 전 세계에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있지만, 자하 하디드만큼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뚜렷하게 표출하는 건축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자하 하디드가 이루어놓은 결과물이란 것이 사실은 매우 대단한 거죠. 어느 장소에서 말없이, 아무런 정보 없이 봐도 이것은 자하 하디드의 건물일 거라고 상상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아이덴티티 건축의 흐름을 만들었잖아요. 그런 점에서 DDP는 정말 훌륭한 거죠. 이런 멋진 공간이 만들어졌는데,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더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점 같아요. 5주년을 맞은 DDP에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DDP는 멈춰 있는 공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하고 진화되어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적인 이미지를 가진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과 함께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하는 유기적인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현재는 외부 대관 행사 및 전시들이 매우 많은 편인데, 저는 DDP 내에서 자발적으로 기획하는 다양한 전시들도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OHS 진행 최진이
Special Interview “곡면이 만들어내는 감동, 형태에 대한 집착”, 유현준 건축가 서울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DDP,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DDP가 시민들에게 어떤 장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두 번째 인터뷰는 유현준 건축가입니다.   DDP에 자주 가시는 편인가요? 자주 가요. 1층 숍에서 가방이나 시계같은 물건도 많이 사요. (웃음) 제가 평양냉면을 좋아하는데, 장충동에서 평양냉면을 먹고 태극당에서 모나카 먹고 동대문 DDP 물건을 사는 게 즐겨가는 코스예요. 심지어 밤에 동대문 시장 구경도 가요. 주차가 편하고 편안하고 깨끗해서 좋아요.  DDP가 들어섰을 때 첫 인상이 어땠나요? 저는 자하 하디드를 싫어하거든요. (웃음) 싫어하는 건축가였는데 완성된 다음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삼성물산에서 건물을 완성도 높게 지었어요. 조감도의 그 곡면이 보기 싫게 나올 거라고, 흉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제가 본 자하 하디드 건물 중 가장 완성도 있게 나온 것 같아요. 깜짝 놀랐어요. 조감도가 드러났을 때 많이 회자되었는데요. 초기 계획안에서 변경도 되었습니다. 완성된 것과 차이는 어떻게 보시나요? 조감도가 워낙 별로였어요. (웃음)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자하 하디드가 이런 퀄리티의 조감도를 내보내다니 싶었어요. 너무 신경을 안 쓴 것 같더라고요. 그런 안이 당선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역시 곡면이 주는 건축물의 감동이 있잖아요. 또 금속 패널로 만든 곡면인 데다가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건축물이 주는 강렬함이 있어서 나름대로 풍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봐요. 주변 컨텍스트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어수선한 주변에 맞추기는 어렵죠. 그런 면에서 다음 100년을 위해서는 괜찮은 건물인 것 같아요. 서울에서 웬만한 건물을 다 부수고 재개발해도 DDP는 절대 부수지 못할 거예요. 워낙 고가로 지었기 때문에요. 유럽에서 만들어진 좋은 건물들은 다 큰 예산을 들여서 못 부수는 거잖아요. 우리는 그 정도로 공사비가 높은 건물을 만든 적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보존이 안 된거죠. DDP는 대한민국 역사상 단위면적당 공사비 금액이 가장 높은 건물이에요. 공을 들여서 만들었고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당대에 최첨단(cutting edge)의 컨디션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남을 만한 건물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또 제가 할 수 있는 디자인은 아니지만, 괜찮은 건물이라고 생각해요.  DDP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캔틸레버보가 크게 나와 있는 브릿지 밑 광장을 가장 좋아해요. 야외 공간인데, 비를 안 맞을 수 있는 지붕이 덮여있는 기분 좋은 공간이에요. 그 정도 스케일의 공간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잠수교밖에 없거든요. 어반 스케일의 처마가 있는 공간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서울시청 건물도 비슷한 콘셉트로 시작했으나 약하게 삐쭉 나와서 그 아래 공간을 느끼기가 힘들죠. DDP는 그 공간감이 굉장히 좋아요. 비정형 공간이 갖는 가치와 의미 혹은 건축적 의미와 함께 교수님이 생각하는 자하 하디드 건축의 한계에 관해 이야기 해주신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온돌 때문에 1층짜리 건물밖에 없었어요. 비 때문에 지붕이 경사가 져야 하고요. 1층짜리 건물에 지붕을 경사로 만드니까 건물 입면에 곡면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가게 돼요. 지붕이 입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물이죠.  그런 건물을 봐오다가 근대에 보일러가 들어오고 2층짜리 철근콘크리트 양옥을 짓고 고층화가 되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파사드(건물의 정면)’라는 것을 갖게 된 거죠. 벽으로 서 있는 건축을 200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다가, 1970년대 들어서서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본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성냥갑 같다’는 반감을 가지는 이유가, 우리 유전자에 없던 건물이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고 우리가 ‘벽의 건축’ 디자인을 잘하지도 못해요. 파사드를 가지는 건물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입면 설계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 것들을 지금 배워가는 단계라고 봐요. 비정형 건물을 통해 우리가 많이 놓친 부분들, 우리가 못 찾아낸 건물들, 추억들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초가집 지붕의 곡선이라든지 기와 지붕의 곡선, 처마 공간 등이 우리가 느껴온 전통 건축인데, 비정형 건축을 볼 때 예전에 익히 봐오던 가치를 비슷하게 나마 느낄 수가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을 것 같아요. 한계라고 한다면 자하 하디드는 디자인 프로세스 자체가 오브제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형태는 재미있게 나오는데 내부 공간은 상가 건물과 똑같아요. 밖에서 봤을 때의 감동이 내부에 가면 ‘내가 도대체 비정형 건물 안에 들어온 것인지, 금강쇼핑센터에 들어온 것인지’ 구별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이유는 내부와 외부의 교류가 없어서인데, 형태를 위한 형틀을 다 벽으로 불투명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DDP의 경우, 창문을 만들고 타공 철판으로 바깥쪽을 감싼 부분이 아주 최소한으로 있죠. 타공 철판 앞쪽에 가면 바깥 경치가 보이겠지만 조금만 측면에서 보면 다 벽으로 보여요. 그래서 자하 하디드가 언덕을 만들고 추억을 가져왔다고 한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어요. 내부에서 언덕이 하나도 안 보이거든요. 그것이 형태에 집착하는 건축의 한계인 거죠. 공모전 때 당선작을 비판하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웃음) 동대문의 역사성이 없다고도 비판하는데, 무슨 역사성이 있을까 싶지만. (웃음) 내외부의 공간 체험이 없다는 게 아쉬워요. 한옥은 처마가 있고 내가 안방에 앉아 있으면 툇마루도 있고 마당을 볼 수 있고 내부와 외부가 유기적으로 교차하고 중간층의 공간이 있잖아요. 이 건축에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어요. 덩어리만 있는 거예요. 
SPECIAL 01 새로운 질서의 패러다임, 자하 하디드, 건축가 이정훈(조호건축) 2019년 5월 24일 2:00PM
SPECIAL 02 DDP의 백도어를 열다, 삼우설계 + DDP 팀 2019년 5월 24일 5:00PM
SPECIAL 03 의자를 생각하다, DDP 소장품 탐색, 김신 디자인컬럼니스트 2019년 5월 25일 2:00PM
SPECIAL 04 DDP를 둘러싼 120년의 시층(時層), 김시덕 문헌학자 2019년 5월 25일 4:00PM
Special Interview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미래주의적인 공간, DDP, 하지훈 가구디자이너 서울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DDP,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DDP가 시민들에게 어떤 장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는 하지훈 가구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DDP와의 첫 만남을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DDP가 개관 당시 가구 컬렉션을 했는데, 제 의자도 컬렉션에 포함되어서 그때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이후 DDP에서 열린 <백두대간 와유(臥遊)> 전시에도 참여했어요. 제가 디자이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게 되었어요.   DDP에 자주 가시나요? 자주 가죠. 전시 보러 가는 경우가 가장 많아요. DDP가 생기면서 가장 좋은 것은 서울에 디자인 전시를 비롯해 수준 높은 전시를 유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가장 반가운 부분이에요. DDP에서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둘레길.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전시공간이 없어요. 전시공간으로서  안 좋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식의 공간이 어디에도 없으니까 독특한 전시를 할 수도 있어요. 건물 안에 길이 있다는 건데, 그것이 자하 하디드의 건축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보통 화이트 큐브 전시에서는 공간 전체가 한눈에 다 보이고, 전시품들이 공간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둘레길은 시선 안에 공간이 한꺼번에 다 드러나지도 않고, 마치 내가 산책하듯이 걸으면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잖아요. DDP만이 가진 굉장히 유니크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공간이 갖는 가치, 혹은 건축적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우리나라는 관념적인 것에 너무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매번 일하면서 느끼지만, 심지어 제가 하는 일도 항상 관념과 싸움이라고 볼 정도예요. 사람들이 가구를 판단할 때, 이 의자가 편한가를 보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의자 디자인에서 과연 사람이 중심이냐, 아니면 조형적인 것이 우선이냐 했을 때, 조형성이 우선시 될 수도 있다는 거죠. 모든 것을 하나의 가치로 판단할 수는 없어요. 예술과 디자인은 어떻게 보면 명확한 답이 없는 분야라는 거죠. 그래서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에 대해 구불거리는 벽 때문에 기능적으로 공간 효율이 떨어진다고 불평한다면 그건 잘못됐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DDP 같은 건축물은 도시 안의 아주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서 더 많은 가치를 갖는 것 같고, 하나쯤은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봐요. 모든 걸 다 공간 효율성으로만 따지다 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건조하겠어요. 이렇게 크레이지한 공간도 있어야, 사람들이 DDP를 보면서 어떤 예술적인 감동을 얻는 거죠. 이것도 기능보다는 조형성이 갖는 사회적인 기능이자 의미라고 봐요. 저는 그런 게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요. 물론 다른 개념의 건축물들도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같은 것이 그래요.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공간이지만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과는 완전히 양쪽 끝단에 있는 거예요. 터에 대한 것, 그리고 기무사 건물을 유지한다거나 아니면 거기에 원래 있었던 역사성을 부드럽게 이어서 만들어나가는 건축이 있는 거죠. 반면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정체성과 개성, '– 주의적'인 것이 강한 건축물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그 도시가 풍성해 지는 거죠. 그래서 DDP가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거예요. 서울에 그런  공간이 없거든요. 물론 처음에는 말이 많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모든 관광객이 둘러보는 공간이 됐단 말이에요. 그게 중요해요. 저는 덴마크에서 공부했는데, 덴마크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건축에 투자를 많이 하고, 특히 주로 공공건물에서 상징성을 풀어내요. 도서관 같은 거요. 저는 그렇게 풀어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공공건물은 왜 맨날 재미없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게 오히려 더 친환경적이고, 돈을 남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투자를 할 수 있는 곳은 투자를 많이 해서 오랫동안 사회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공공건물은 여러 사람한테 의미를 전달해 주는 거잖아요. 사람들에게 ‘저런 건물이 들어서니까 주변 공간이 어떻게 바뀌고,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하는 것들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공공건물이 가장 효과적인 거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관념적으로 공공건물에는 돈을 많이 쓰면 안 된다는 둥 여러 가지 저해 요소가 있어요. 관념과 싸움에서 그걸 어떻게 관철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죠. 그게 예술이고요. 싸워나가는 거죠. 다른 생각을 갖고 간다는 것이 필요해요. 그래서 DDP가 중요한 겁니다. DDP는 우리나라의 건축에 대한 관념을 깨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게 틀릴 수도 있다는 것들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건축만큼 많은 향을 줄 수 있는 게 어디 있어요. 도시와 건축의 관계에서 또 도시의 풍경 측면에서, 서울 안에서 DDP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정답은 없어요. 어느 공간에 외계 우주선이 추락한 듯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도 공간을 구성하는 데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DDP는 그 공간에 대한 주변 것들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공간은 아니에요. 충격적인 공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사실은 그런 공간들이 우리나라에는, 서울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와 건물들이어서 공간이, 도시가 재미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잖아요. 그런 공간에서 이렇게 충격을 줄 수 있고, 조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해요.     DDP는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복합문화공간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모두 DDP와 나름의 접합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디자인계 내에서 DDP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 경우는 DDP가 있어서 안심하게 돼요. 내가 지금 DDP와 뭔가 하지 않더라도 ‘DDP가 있으니 언제든 거기서 무언가를 하면 돼’ 라고나 할까요.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디자인 분야에서 뭔가 안심할 수 있는 든든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또 DDP에 관해 이야기할 때 패션이니 디자인이니 그런 것은 상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안 좋은 부분 중 하나가 자꾸 공예, 디자인, 예술, 패션, 건축 등 분야를 나눈다는 거예요. 그걸 왜 나누나요. 장르가 무너진 지가 언젠데요. 오히려 이제는 장르 구분하지 않고, 확실하게 DDP라는 공간의 퀄리티에 맞는 전시 기획을 하면 좋겠어요. 퀄리티 있는 전시들이 잘 필터링 되어서 DDP에서 계속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다른 기획을 하는 것보다 좋은 전시만 계속 보여줘도 DDP의 역할은 다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 가장 자주 회자되는 화두가 플랫폼이라는 단어입니다. 앞으로 DDP는 그 자체로서 어떤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인 산업과 연계해서 기대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DDP에 가면 전시뿐만 아니라 콘텐츠가 많아야 해요. ‘주말에 우리 어디 갈까?’ 했을 때 DDP에 가면 하루를 온전히 그곳에서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어렵죠. 수익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를 안 하고 가도 충분히 볼거리가 있어야 해요. 처음에는 건축물을 보러 갔다가도 두 번째부터는 이전과는 다른 즐길 거리, 즉 콘텐츠가 계속 있어야 하는 거죠. DDP의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해요. 요즘은 백화점만 해도 푸드코트에 전국 맛집들을 불러 모으잖아요. 그러니까 DDP 안에서도 다른 공간에서 볼 수 없는 전시라든지 아니면 F&B 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한 기획이 필요한 거죠. 어려운 문제예요. 사람도 필요하고요. 이런 걸 예술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대미술관을 보면 큐레이터 제도가 있잖아요. 외부기획자도 있고요. 다시 말해 내부에서 모든 기획을 다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예산이 있으면 그 예산 안에서 좋은 기획을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거 같아요. 그럼 부담 없이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DDP가 비판 받는 이유는 그 좋은 공간을 가지고 왜 그렇게밖에 못하냐는 내용이 가장 많을 거예요. 저는 오히려 디자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예술과 문화가 더 어우러지면서 장르에 좀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5주년을 맞은 DDP에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더 오래된 것 같은데 5주년밖에 안 됐네요. 저는 이 점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DDP 주변에 여행용 가방 끌고 다니는 외국인들이 매우 많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저는 역시 DDP를 만든 게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앞을 내다보고 투자를 좀 더 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여기서 머물 수 있고, 한국, 서울을 방문하게 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죠. 물론 앞으로 풀어야 하는 숙제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우리의 문제는 항상 너무 조급하게, 한 번에 다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니 그것만 조심하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DDP는 오랫동안 그 장소에 머물러 있을 테니 한 달, 일 년,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지면서 건축의 완성도에 걸맞게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이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이너뿐만 아니고 모든 서울시민이 격려와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OHS 진행 최진이
DDP 포럼 도시 전략, 접점을 확장하다, 서울디자인재단+오픈하우스서울 2019년 12월 13일 3:00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