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공간 2

영상ㅣ고안된 장식들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고안된 장식들 A Model of Sporadic Thoughts
 
 “건축가의 철학이 드러나는 집에서 살고 싶었어요. 요구사항은 많지 않아요. 우리는 작은집에서 살 준비가 되어있어요. 다행이도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땅을 서울에서 구 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이장소가 세상의 모든 날카로운 것으로 부터 자유롭고 안전한 장소이길 바래요. 그래도 수압은 좀 신경 써주세요.”
 
틈틈이 노트에 써놓은 글 들을 엮어 단편집을 만드는 소설가의 마음으로 녹번동주택을 작업하고 있다.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모으고 작은 스케치들을 합쳐보는 과정만 있는, 부분이 부분 일 뿐 전체가 없는 그야말로 단편집이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에서 출발해 대지를 읽고 형태를 만드는 속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내게는 실험이다.  냉철하고 치밀한 두뇌, 야망 가득한 눈빛은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건축의 이미지
박공지붕, 네모난 창, 낮은 울타리, 그리고 나무 한 그루. 어릴 적 물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만약 내가 유치원 미술 시간에 그린 ‘집’의 드로잉이 남아 있다면, 분명 그 집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혹은 당신도 그렸을 법한 바로 그 집이었을 것이다. 빨간 지붕에 뻐꾸기창. 혹시라도 마당 한가운데 그린 나무의 가지가 잎이 없이 앙상하다면 평소 외로운 아이로 낙인찍혔을 바로 그 집. 그 이미지. 집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내 머릿속에 각인된 집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애써 보기도 했었다. 그 이미지는 감옥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내가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기소침해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희대의 천재 건축가가 아닌 평범한 교육을 받은 보통의 인간임을 받아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발버둥에도 여지없이 똥이 되고야 마는 스케치와 모델들을 보면서 내가 똥을 그렸던가. 아닌데 집을 그렸는데. 그럼 역시 집 같지 않은 집은 똥이다. 완벽한 삼단논법이 완성되고 나서야 겨우 이 번뇌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는 4학년 3반
녹번동 주택은 우리 집의 이미지, 그 원형을 되짚어 본 작업이었다. 내 친구 정락이네 집에는 주물대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면 잘 정리된 조경수들과 함께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큰 개들이 뒹굴었고 대문보다 더 큰 거실 창은 마당으로 열려 있었다. 이건 뭐랄까. 나에겐 판타지. 판타지의 전형. 어릴 적 내가 살던 우리 집은 아버지가 일하던 전방을 통해야만 갈 수 있었다. 전방에는 담배 냄새가 났고 시시껄렁한 양아치 삼촌들이 내 꼬추를 호심탐탐 노리고 있었기에 잽싸게 통과해야만 했다. 다시 외부로 나가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똘이(레쉬+삽살이) 집과 수돗가가 계단참에 있었고 차례로 작은 등나무 파고라와 녹슨 그네가 있던 우리 집. 진짜 집의 기억. 나는 창녕 영산 출신이지만 서울 녹번동에선 고향의 냄새가 났다.
대지의 두 면에 접한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좁은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작은 대문이 있지만 변하는 건 없다. 개의치 않고 또다시 좁은 길이 이어진다. 좁은 길은 계단을 지나면 축축한 바닥이 된다. 작업실 유리창에 손바닥 지문을 남기면서 2층까지 난 외부계단으로 올라가면 비로소 거실이 나오는 진짜 집의 이미지.
 
 맥락 안의 건축
오래된 토지를 상대할 때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다리 꼬지 말 것이며 삿대질도 조심할 것. 오랜 세월 동안 덧붙여진 법규들이며 작은 오차들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35m 이상의 막다른 골목길은 도로선을 후퇴하게 만든다거나,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을 옆집은 경계를 한참이나 넘어와 있다거나, 점점 높아진 도로의 레벨로 집이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거나 하는 작은 사건들 말이다. 이렇듯 시간은 경계를 뭉퉁하게 만든다. 담장에 기대 노각을 파는 노인, 벽과 도로경계선 사이를 마당 삼아 화단을 가꾸는 다가구 빌라, 주차금지 표지판을 대신하는 무거운 화분들, 뭉퉁한 경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
 
담장 밖의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이 경계에 날을 세우기 시작하면 크고 작은 틈들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녹번동 주택은 옆집이 넘어와 쓸 수가 없는 1m 폭의 틈이 생기고야 말았다. 나는 이 틈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내 것도 당신 것도 아닌 마당도 아닌 길도 아닌 이 틈은 옆집 건물의 모서리에서 정확히 한 뼘 떨어져 있다. 고양이도 지나갈라치면 뺨이 좌우로 댕겨지는 작은 틈이지만 옆집이 허물어 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막다른 골목을 연결해주는 동네 길이 될 것이다. 의뢰인에게 부디 이 틈을 마당에 편입하지 마시고 이대로 두시면 좋겠다고 간곡히 요청을 드렸다. 
녹번동 주택은 양쪽에 두 개의 인접 대지가 있는데 한쪽은 이미 침범을 한 상태이니 담장을 허물고 다시 세우기로 합의가 됐고 반대편 대지의 담장은 아슬아슬하게 경계면에 걸쳐져 있어 존치하고 새로운 담장을 덧씌우기로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옆집 담장의 높이라든가 재료 같은 것들이 여간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데 옆집 담장의 안면이 집의 겉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존의 낮은 담장을 여전히 뭉퉁한 경계로 남겨 두기로 했다. 기존 담장과 한 몸이 되는 두툼하고 낮은 담장을 만들어 담의 윗면을 이웃과 공유할 수 있도록. 
 
빛의 언어
나는 17살부터 자취를 시작했고 이후 15년간 반지하와 북향집을 전전하며 궁색한 생활을 하였는데 매번 이사를 할 때마다 자연광 한줄기의 영광을 포기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자취방에선 한줄기 정도의 빛의 영광은 누릴 수 있었는데, 하루 중 단 몇 분뿐이었지만 폭 3cm의 직선의 광선이 방안을 드리울 때면 웃통을 벗고 마른 몸 구석구석 비추는 일광욕 시간을 가졌다. 그제야 보이는 안 보이는 것들. 떠도는 먼지며 걸레받이 틈의 개미집들같이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던 것들의 존재들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자연주의자들이 직선에 대한 혐오를 얘기해도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억오천만 킬로미터를 직선거리로 7분 만에 날라와 방구석 개미집까지 비추는 대자연의 언어, 그것이 파동이든 입자든 뭐든 간에 직선인 것이다.
 
온화한 덩어리
대지는 남서 방향에 넓은 변을 맞대고 있다. 오전에 동쪽에서 비추는 조광을 짧은 변에서 짧은 시간 받아들이고 남에서 서로 넘어가는 동안 긴 시간 일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태양을 바라보고 여러 개의 창문을 내 모든 공간에 온종일 빛이 집안 내부를 드리우는 것을 상상하니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직선이 마음에 걸린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배려 없는 속사포의 직설을 종일 듣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빛의 변화가 은유적이었으면 좋겠다. 직선의 그림자가 공간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 온화한 빛의 덩어리가 잠시 머물다 가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북쪽의 파사드는 기능 없이 독립적으로 서 있는 벽이다. 남쪽에서 쏟아지는 속사포의 빛을 머금었다가 집 내부로 옮겨주는 역할만 할 뿐 다른 기능은 없다. 파사드 안쪽 면에서 집은 속살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 커튼월 방식으로 시공된 깊이가 없는 얇은 유리 한 장으로 벽과 대면하고 있다.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니 커튼이 필요 없다. 마치 넓은 dry area를 둔 지하와도 같다. 벽에 부딪히고 산란한 빛은 파동은 사라지고 질량만 남아 집안에서 오랜 시간 머문다. 마치 새벽에 아내 몰래 끓여 먹은 라면 냄새가 아침에도 다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이것이 광활한 자연을 대하는 이 집의 자세이다.
 
밤의 표면과 장식된 빛
검은 밤이 찾아오고 하나둘 전등이 켜지면 치부는 비로소 드러난다. 자연광의 따뜻한 색온도로 모든 게 용서되는 낮이 지나고 울퉁불퉁하고 거친 벽체 위에 날 선 조명이 떨어지는 밤이 오면 은혜로운 낮에 숨어있던 실수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진실의 시간이다. 무자비한 상대에게 전부를 밝히는 실수를 하지 말자. 어두움이 묻은 밤의 벽면은, 표면은, 낮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물질이 다. 빛이 내려앉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공간을 하기 위한 빛이 아니라 필요한 지점마다 바닥에 내려앉는 불빛, 새어나오는 불빛, 좁고 깊은 천장의 슬라브 구멍에서 나와 바닥 일부를 비추는 불빛, 얕고 긴 틈에서 나오는 옅은 불빛.
‘선생님. 그런 조명은 어디서 파나요?’
마우스와 키보드를 내려놓고 우리는 기꺼이 목수가 되기로 하였다.
 
윤한진
 

설계 푸하하하프렌즈,윤한진,한승재,한양규,홍현석,조영호,박혜상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93.62 ㎡
건축면적 51.04 ㎡
연면적 110.6 ㎡
규모 지하1층, 지상2층
주차 1대
건폐율 54.52%
용적율 78.58%
구조 철근콘크리트
구조설계 터구조
시공 지음씨엠
기계,전기,소방설계 하나기연
설계기간 2019.08~ 2020.06
의뢰인 김수민,이석율

푸하하하프렌즈
윤한진 + 한승재 + 한양규

푸하하하프렌즈(FHHH Friends)는 한승재, 한양규, 윤한진 세 명의 친구로 구성된 건축설계사무소 이다.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건축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2014년 김해건축대상, 2016년 서울시 건축상을 받았으며, 2017년 '한강여의나루 선착장 국제설계 공모' 4등 및 2019년 올해 초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설계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현재 6명의 긍정적인 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하며 실무에 임하고 있다. 


푸하하하프렌즈
fhhhfriends.com
건축가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위치 서울시 은평구 녹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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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건축가 정재헌, 오픈하우스서울×기린그림 건축가의 여러 작업을 돌아보면서 건축 세계를 탐색해온 건축가특집으로 올해는 건축가 정재헌을 만납니다.  건축가 정재헌은 기하학적 절제미를 통해 내외부 공간을 엮어내며 간결하면서도 여백이 담긴 건축을 펼쳐내는 건축가입니다. 프랑스 건축가 로랑 살로몽은 그의 건축을 '수학적 감성의 구현'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섬세하게 조율된 비례를 통해 몸의 감각으로 건축의 치수와 재료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뛰어난 공간감을 주목한 말입니다. 마치 선방의 공간 같은 그의 건축은 급진적인 파격은 없지만, 몸으로 경험하는 공간의 편안함을 전해줍니다. 다수의 집 프로젝트로 알려졌지만, 그의 건축은 주거 뿐만 아니라 호텔, 사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전위지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 건축가특집은 건축가 정재헌의 수학적인 구조와 몸의 경험, 삶과 밀접한 장소에 대한 고민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올해 건축가특집은 건축 영상/영화 제작 스튜디오 <기린그림>과 협업으로 3개의 건축 영상과 1개의 오픈하우스 프로그램, 라이브로 진행될 오픈스튜디오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글 임진영(오픈하우스서울 대표)  사진 이강석 온라인 프로그램   영상  운중 디바인-1 영상  디파이 사옥 영상  운중동 친구네 집 Live 오픈스튜디오 정재헌(모노건축사사무소) 현장 프로그램 (10월 22일 오후 2시 예약 오픈)  10월 31일 오후 2시  나무 호텔  
OpenHouse 고쳐 쓰는 집, 오픈하우스서울 x 기린그림 오픈하우스서울 2021의 올해 주제는 <고쳐 쓰는 집>입니다. 지난해 코로나 19로 돌아본 <집의 공간>에서 효율과 기능에 집약된 주거에서 벗어나 내외부 공간의 중간지대를 탐색했던 오픈하우스서울은 올해 집을 고쳐 쓰는 행위를 통해 집의 수명을 늘리고 공간의 가치를 발견하며 이를 새로운 형식으로 확장하는 작업들을 주목합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집을 원형에 더 가깝게 수리하고 집의 수명과 의미를 이어가고 있는 수졸당과 주변의 재개발 사이에서 방치된 다가구 주택을 사무실과 스튜디오로 변모시킨 Face-lift 상도와 전봇대집, 의뢰인의 어릴 적 기억이 담긴 50년대 주택을 게스트하우스로 변경한 보눔 1957, 60년대 주택을 과감히 수리해 아늑한 집을 만들어낸 예진이네집, 그리고 100년된 윤동주가 머물렀던 연세대학교 핀슨홀을 리노베이션해 윤동주기념관으로 변모시킨 프로젝트까지, 집을 고치는 의미와 과정을 기린그림의 영상으로 만나봅니다. 또한 리모델링,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 프로젝트를 현장에서도 만나볼 예정입니다.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고쳐 쓰는 집>을 만나보세요.   온라인 프로그램  영상 수졸당(守拙堂)_승효상 영상 전봇대집(The Pole House) _조윤희, 홍지학 영상 Face-Lift Sangdo_이승택, 임미정 영상 보눔 1957_김찬중 영상 윤동주기념관_성주은, 염상훈, 최선용 영상 예진이네 집수리_김재관    현장 프로그램 (10월 22일 오후 2시 예약 오픈)  11월 1일 오후 1시 서울공예박물관_송하엽, 천장환, 이용호 11월 6일 오전 11시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리노베이션_김승회(진행_ 백남혁 경영위치) 11월 7일 오후 1시, 3시 윤동주기념관_성주은, 염상훈, 최선용 11월 8일 오후 2시 해방촌 갤러리 더 월_김승회(진행_ 이예슬 경영위치 팀장) 협력 프로그램 <빈집의 재발견> (10월 22일 오후 2시 예약 오픈)  서울특별시 집수리지원센터 × 오픈하우스서울 10월 30일 오후 2시 건축가 김중업의 사직동 주택 ㅣ 진행_안창모 교수  10월 30일 오후 4시 건축가 김중업의 사직동 주택 ㅣ 진행_김현섭 교수
OpenHouse 집의 공간 2, 오픈하우스서울 x 기린그림 지난해 <집의 공간>에 이어 올해는 두 채의 집을 소개합니다. <집의 공간 2>에서는 지붕과 테라스를 유려한 선으로 이으면서 동시에 패시브 하우스를 시도해 미학과 에너지 절감을 동시에 실현하고자 한 선유재와 풍경을 적극적으로 규정하면서 집의 아늑한 공간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하는 고안된 장식들을 기린그림의 건축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써드플레이스 3과 서교 근생과 같은 저층형 공동주거의 모색을 현장 프로그램으로 만나봅니다.  오픈하우스서울은 해마다 집의 공간 시리즈를 이어가, 우리의 삶이 담긴 공간과 도시와 건축의 접점을 모색해나가고자 합니다. 온라인 프로그램  영상    선유재_이정훈  영상    고안된 장식들_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현장 프로그램 (10월 22일 오후 2시 예약 오픈)  10월 30일 오후 4시          서교 근생(Seogyo Geunsaeng)_서재원, 이의행 11월 9일 오후 1시            써드플레이스 홍은2_박창현         
SPECIAL 영상 ㅣ 운중동 친구네 집, 정재헌 오픈하우스서울×기린그림 친구네 집짓기 지인이나 가족의 집을 설계하는 일은 매우 즐겁다. 잘 아는 만큼, 잘 어울릴 만한 집을 제안하기도 좋고, 소통하기도 편하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동검리 주택단지 펼친 집>, 같은 반 친구의 <도천 라일락집>이 그랬다. 물론 그 과정은 건축가가 하는 일반적인 일의 범위를 넘어 가족이며 친구로서 애정이 어린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매우 고된 시간이다.  판교에 집을 짓고 싶은 친한 친구가 찾아오면서 다시 즐거운 고민이 시작됐다. 판교 신도시 주택지에 <요철동>과 <모퉁이 집>을 지은 지 10년이 지났다. 풍경도 많이 변했다. 대부분 택지가 픽셀처럼 대지를 가득 채웠고, 가로와 공원 등 빈 곳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아직 집과 상가, 개울과 산이 어우러지기보다는 따로 떨어진 객체로 남아있다. 각각의 몸짓을 통해 웅성거리며 소리를 내는 것 같다. 판교의 풍경은 조탁될 시간이 여전히 필요해 보인다.  10년 동안 해마다 한 채 정도의 집을 판교에 지으면서 이 지역을 살폈다. 이 시대 도심형 주거에 관한 탐구와 사색의 과정이었다. 집에 대한 처음 생각은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점점 더 선명해지고 명료해졌다. 우선은 건축가로서 집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건축주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의견이 다양해졌다. 이런 생각의 변화가 친구네 집에 잘 담겼다.      비편(非便)한 집 집은 불편(不便)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편해 보이는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린 아파트에서 이미 경험했다. 이 집은 때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집이다. 우리가 익숙한 아파트의 편리한 공간 구조와 기능에 반하고 대척점에 있는 집이지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재료, 질감, 소리, 기억이 담겨있다. 그리고 판교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보여주기 위한 집이기보다 친구네 집처럼 이웃과 어울리고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편안한 집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요즘 사용되는 비혼(非婚)이라는 단어에는 일반적인 상태나 상황을 넘어서는 개인의 의지가 담겨있다.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같은 것이다. 건축가인 친구의 의지와 건축주인 친구의 마음이 닿아 만든 이 집이 비편(非便)한 경험을 통해 몸과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리라 기대한다.  글 정재헌 사진 박영채  
SPECIAL 영상 ㅣ 운중 디바인-1, 정재헌 오픈하우스서울×기린그림 판교 택지개발 지구 내 주택지와 달리 70채 정도의 타운하우스로 조성된 터이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4m 높이의 기단이 조성되어 있다. 단지 전면은 도로를 따라 형성된 280m 길이의 거대한 기단이 성벽처럼 도시를 가른다. 도시와 단절된 단지의 소통은 동서쪽 2개의 진입로가 유일하다. 집터는 서쪽 진입로의 좌측 문루 위치이다. 설계 후 우연히 입구 맞은편 우측집도 설계를 진행하게 되어 단지 입구를 완성하게 되었다.    기단 위의 집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생각의 시작점이다. 기단이 주는 거대한 장벽은 주거에 어울리지 않는 스케일을 강요한다. 생활공간 스케일로 공간을 구성하기에 연속된 기단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공간의 스케일을 맞추며 도시적 풍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기단 위에 단순하게 수평으로 떠 있는 집을 상상했다.  기단 상부 떠 있는 건물의 볼륨은 자연스럽게 기단과 차이를 만들며 새로운 사이 공간을 만든다. 이런 특성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에는 각각 적합한 기능을 담았다. 기단 내부에는 주차장과 진입 마당, 기단 상부 볼륨에는 개인 공간인 침실이 위치한다. 그 사이는 생활공간인 거실, 식당, 부엌, 그리고 외부 거실이 있다.  집의 공간 성격도 대비적이다. 침실을 담고 있는 상부 볼륨은 내향적이다. 방과 방 사이의 작은 마당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는 만든다. 반면, 볼륨 하부는 거실과 마당으로 연속된 내·외부 공간으로 경계 없이 하나로 통합되어 깊이감을 더한다. 계절과 날씨, 생활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가변적인 장소이다. 이곳은 마루와 같은 외부 거실로 때로는 손님을 맞이하고, 때로는 가장 평화로운 사적인 공간으로 사용될 것이다. 인공 기단이라는 도시적 난제가 좋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누마루와 같이 가장 매력적인 장소로 바뀌는 순간이다. 글 정재헌 사진 최용준
고쳐 쓰는 집 영상 ㅣ 예진이네 집수리, 김재관 두 가구가 함께 거주할 경우를 염두에 둔 집수리다. 기존 건물과 증축된 건물 사이에 현관을 두어 한 가족인 두 가구를 연결하거나 때로는 분리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건물은 56년 된 낡은 주택으로 기본적인 골격은 유지하면서 지금 상황에 적합한 구조로 수리했다. 단(段)의 수리(修理) _ 안팎으로 많은 레벨이 존재하는 이유는 건축적 흥미를 위한 시도가 아니다. 경사지에 지어진 집에서 만들어진 격차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며 그 방향이 내부공간에서 마당으로 향하고 있다.  시간(時間)의 수리(修理) _ 오래전에 지어진 이 집은 지난 시간이 남긴 흔적의 집합체이기도 했다. 고목, 축대, 담장, 목재 트러스, 탄화된 구들 등 이것들의 유효함은 유적처럼 박제된 가치로서가 아니라 새로 발생하는 쓸모에 따라 새롭게 판정되었다.  암(暗)의 수리(修理) _ 빛은 밝게도 하지만 더 깊은 어둠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남북으로 두꺼운 이 집은 빛이 내부에 골고루 미치지 않았다. 그 편차를 줄이기 위해 창문의 크기를 확대한다면 오히려 명암의 격차도 커지기 때문에 천창을 내어 빛이 골고루 퍼지게 했다. 글, 사진 김재관 설계회사 무회건축사사무소(Moohoi Architecture Studio) 시공자 무회건축사사무소 용도 단독주택 규모 지상 1층 연면적 139.02㎡ 
고쳐 쓰는 집 영상ㅣ 윤동주기념관, 성주은, 염상훈, 최선용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은 시인 윤동주가 생활했던 기숙사 건물인 연세대학교 핀슨관을 윤동주와 후대 문인의 삶과 문학을 추념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바꾼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이다. 1922년에 기숙사로 지은 핀슨관은 현존하는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건축물 중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로, 지난 100여 년간 신학관, 음악관, 법인사무처 등 여러 용도로 활용되다 2020년 윤동주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윤동주의 유품과 문학 유산, 그리고 100여 년 전에 지은 건축 유산을 활용해 기념관으로 만드는 과정은 문학, 역사, 디자인, 전시,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고민을 나누며 긴밀한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윤동주기념관 준비위원회 TF팀이 구성되었고, 연세대학교 문과대학과 건축공학과가 실무의 중심이 되어 기념관의 의미와 건축 유산의 재사용에 대해 오랫동안 깊은 논의를 반복했다. 다수의 라운드 테이블과 자문회의 및 토론회를 거쳤고, 건축과 문학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 윤동주의 유산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을 넘어 그의 정신을 새롭게 해석하고 확장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과거를 재현하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오늘의 해석과 내일을 여는 창조가 진행될 수 있는 기념관 조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3개 층으로 이루어진 핀슨관은 층마다 건축, 구조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졌다. 내부는 용도에 따라 여러 번 변경되고 안쪽으로 덧창이 더해지기는 했지만, 외벽과 기존 창문은 원형의 모습으로 100여 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한 면에서 창은 설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고, 각 층의 창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방문자와 관계 맺을 수 있게 함으로써 공간과 창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했다. 1층에는 좁은 복도를 따라 기숙사 개별 방이 있었고, 남쪽 끝에는 당시 HR룸으로 사용되었던 휴게 공간이 놓여 있었다. 윤동주기념관에서는 1층이 전시 영역으로 전용되었고, 기존의 공간감을 유지하면서 중앙 복도 중심의 동선을 외벽 중심의 공간으로 바꾸어 관람자가 창과 긴밀하게 만날 수 있게 했다. 외벽과 내벽을 일부 이격시켜 전시 관람을 위한 선형적 동선을 확보하는 동시에 창을 따라 움직이며 창 안과 밖을 동시에 느끼면서 100여 년의 세월을 경험하게 했다. 중앙 복도는 이동의 목적보다는 기존 기숙사 복도의 스케일과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의 공간으로 유지했다. 신설된 계단을 통해 1층과의 전시 연계성이 긴밀해진 2층은 아카이브 라이브러리가 자리해 국내외 윤동주 관련 자료가 수집되고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는 곳으로, 1· 3층 공간과 달리 조금은 더 현대적이고 열린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회벽으로 마감되었던 기존 내부 벽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겹의 페인트와 벽지 등의 마감이 더해진 것이 확인되었다. 외벽 내측 면에 칠해진 페인트와 벽지 등의 시간의 켜를 노출했고, 창과 아카이브 자료에 둘러싸인 열린 공간은 윤동주의 과거 유산이 새롭게 창조되고 미래로 확장되는 의미를 담았다. 원형 유지가 가장 잘 되어 있었던 3층은 기존 회벽으로 마감되어 있던 낮은 천장의 지붕 구조를 드러내어 묘한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출된 목구조의 기하학은 도머창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절제된 빛과 함께 조용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관람자가 조용히 공간을 느끼고 창밖을 보며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서정적인 공간으로 의도했다. 새롭게 개관하는 윤동주기념관은 기숙사 당시의 아늑한 공간감은 지켜가며 그동안 쌓인 역사의 켜를 드러내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얽힌 복합적 시간의 겹침을 만들어내고 있다.  글 성주은, 염상훈 사진 김용관 장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연세대학교 핀슨관 (03722) 개관 월 - 금10:00~17:00  휴관 주말 및 공휴일 이용요금 무료 *운영시간은 변동될 수 있으니 홈페이지 확인 후 방문바랍니다.  홈페이지 yoondongju.yonsei.ac.kr
고쳐 쓰는 집 영상 ㅣ 보눔 1957, 김찬중 1957년에 준공이 된 가회동 30-2번지의 양옥과 30-7번지의 한옥은 의뢰인이 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던 집이다. 의뢰인은 장성하여 이 집을 떠났지만 추억이 담긴 공간을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후 이곳을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다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시켰다. 양옥과 한옥의 1, 2층에는 총 11개의 게스트룸이 있으며, 양옥의 지하 층에는 부대 시설인 와인바와 카페를 만들어 게스트하우스 방문객 뿐만 아니라 북촌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의 외형은 거의 변경하지 않고 보수나 교체가 필요한 요소들만 정리하였다. 핸드레일, 샹들리에, 벽, 천정 마감, 문, 손잡이 등 1950년대의 건축기법을 볼 수 있는 요소들은 그대로 살려 이 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건물의 과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넓은 잔디 마당을 사이에 두고 양옥과 공존하는 한옥은 기본적인 보수를 하고 한옥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양쪽 두 개의 방에 각각 화장실을 설치하였다. 보눔 1957는 60년 건물의 역사, 건축주의 어린 시절 추억, 공존하는 과거와 현재의 건축기법, 새로운 이용자인 외국인 등 각기 다른 요소들이 모여 북촌에 새로운 재미와 장소성을 선사한다. 글 더시스템랩  사진 김용관  오픈하우스 진행 최진철 (더시스템랩 팀장) 더시스템랩  http://thesystemlab.com 시공사 (주)금강엔터프라이즈 김찬중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의 한울 건축과 캠브리지의 Chan Krieger Associates, 그리고 보스톤의 KSWA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귀국 후 현재까지 경희대 건축대학원의 설계전공 초빙 교수로 재직하면서 THE_SYSTEM LAB 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에 제1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대표 건축가로 초청되었으며, 같은 해 중국 베이징 국제 건축 비엔날레에서는 주목받는 아시아 젋은 건축가 6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작업들은 국내는 물론 Domus(Italy), Casa Mica(Spain), Uitvaart(Netherlands), Arbitare(Italy, China), Mark (Netherlands), Architectural Review (England) 등의 국제적인 저널에도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폴스미스 플래그십스토어, 연희동갤러리, 래미안 갤러리, 한강 보행자터널 프로젝트, 쌍용파인트리, 국립현대미술관 큐브릭, SK 행복나눔재단 사옥, KHVatec 사옥, 한남동 핸즈 사옥, 구름에 리조트 등이 있다.
고쳐 쓰는 집 영상 ㅣ Face-Lift Sangdo, 이승택, 임미정 대지 위치와 주변의 변화 상도동은 지난 10년 동안 재개발로 약 10,000세대의 아파트가 공급되었다. 상도 더샾, 상도 두산 위브, 상도 노빌리티, 상도 롯데캐슬 등으로 둘러싸인 지역의 안쪽에는 고립된 듯한 오래된 빌라촌이 존재한다. 빌라촌은 재개발 호재에서 비켜나 연립, 다가구 등 신축 건물과 노후화된 건물이 질서 없이 혼재되어 있다. 이 건물의 대지는 상도역과 장승배기역 사이 만양로를 따라 북쪽으로 진입하는 그 빌라촌의 초입에 위치한다.  주변의 아파트 단지로 인해 주거 공급률은 높아진 반면 대상지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에 대한 주거 임대율은 낮아졌다. 아파트 거주민들을 위한 근린생활시설(상업시설)에 대한 수요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나 필지의 크기가 작아 사업성이 높지 않아 보였다. 협소한 대지면적 (62㎡)으로 신축할 경우 도로 산입, 주차와 사선을 고려하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면적 대비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30년을 다가구 주택으로 활용하며 임대 수익이 발생했던 건물에 대한 용도 변화가 요구되었다. 더불어 재개발의 남겨진 영역에 임대의 목적으로 난개발된 주변 풍경은 더는 집합체적 가치로서 문맥의 의미를 제공하지 않았다. ‘Face-Lift 상도’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옛 건물의 리모델링(대수선)에 대한 방향성을 제안한다. 용도의 변경과 대수선의 범위 자동차 산업에서 많이 쓰이는 ‘Face-Lift’라는 용어는 신차 출시 이후 풀 체인지(혹은 또 다른 신차개발)까지의 기간 동안 소비자의 관심을 다시 받아 상품성을 올리기 위해 내•외부에서 행해지는 디자인 변화를 통칭한다. 생산 라인을 바꾸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작게는 램프(Lamp), 범퍼(Bumper) 등의 교체부터 크게는 엔진 및 변속기를 비롯한 실내디자인의 변경까지 포함한다.  ‘Face-Lift 상도’는 1인 기업이 건물을 사용하게 되면서 주변 주거의 맥락과 다른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부 계단 동선, 주 출입구 위치, 내•외부 벽체와 공간의 크기 및 내외부 마감과 건축적 요소 등 다양한 범위에서 전방위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웹툰 작가이기도 한 건축주는 스토리의 기획, 출판, 전시 및 홍보 등 일련의 과정들을 층별로 실행할 수 있는 1인 출판사를 계획했다. 건폐율은 거의 다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구조 보강을 통해 1개 층 정도를 수직 증축하면 필요한 면적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임대 수익을 위한 최대 면적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필요한 면적을 채워나가는 접근이 가능했기에 건물의 규모는 기존 주거지가 갖는 익숙한 스케일과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방, 거실 및 화장실의 위치와 크기 등 주거의 평면 구성은 근린생활과 다르고 층별 건축 면적이 10평 정도로 작은 공간임에도, 자유로운 공간 활용을 위해 기존의 공간은 철거되고 새롭게 구성되어야 했다. 계단을 지지하는 내력벽과 기존 세대별 현관이 연결되는 부위는 ‘형식적 구조’를 유지하면서 오프닝을 내어, 수직적으로 다른 프로그램을 연결할 때 사용되는 전이 공간으로 치환되었다.  기존 다가구 건물의 주 진입은 외부였던 계단실의 참에 설치된 유리문이었다. 도로에서 여유 공간 없이 강제하듯 바로 진입했기 때문에 새롭게 변화될 공간의 프로그램상 동선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에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주 출입구를 옮기고 계단을 내부화하였다. 그 계단실을 따라 기존 옥상층을 내부로 연장하여 증축하고 물탱크실을 철거하면서 그 층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옥상 정원을 만들 수 있었다.  대부분 변형된 것에 반하여 또렷하게 옛 건물의 흔적을 남긴 요소가 있다. 기존 건물의 바닥을 철거할 때 모아둔 난방 배관 주위 자갈을 재사용한 것이다. 건물 전체의 각 층 바닥 무근 마감에 재활용하여 골재 면이 노출된 콘크리트 폴리싱으로 오래된 재료의 질감을 유지하였다. 구조의 보강과 공간의 사용성 최근 많이 이루어지는 대수선(리모델링)의 공간적 요소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만들어진 빈티지 미장면과 철재 기둥(Steel column)과 빔(Beam)의 철골 보강 조합이다. 최근 강화된 내진구조 설계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오래된 건물의 내력벽을 수정할 경우, 가장 보편적으로 철골로 프레임을 형성하여 구조적 성능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자, 일종의 소비되는 멋이다. 그러나 최하층의 상황이 프레임의 하중을 전달하는 기초 부분 보강을 위해 장비가 들어서서 작업하기 어려울 정도이고, 좁은 바닥 면적과 낮은 층고로 인해 기둥과 보에 의한 공간 손실도 아쉬운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Face-Lift 상도’는 철골 대신 철근콘크리트 벽체 구조 보강을 통해 내부 사용 공간을 최대치로 확보하고 내진구조를 동시에 만족하였고, 더불어 대수선의 클리셰(cliché)로 대변되는 철골 부재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감추었다. 프로그램의 기획과 층별 조닝 1층은 독립서점(+외부공간), 2층은 갤러리, 3층은 작가의 작업실, 4층은 공유 주방(+옥상 정원)이며 1인 출판사로서 기획부터 홍보, 출판 그리고 그 판매까지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이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층과 4층의 외부공간은 층별 행사 및 활동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이 외부로 확장 연계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주 출입과 분리되어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고 팝업 스토어나 이벤트를 위한 대기 공간이 되기도 하며 간단한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얇은 마당들이다.  간유리와 샷시로 막혀 있던 계단실은 채광과 풍경을 위해 또한 사람들의 움직임과 머무름을 최대한 도시로 표출하기 위해 투명유리로 교체하였다. 변화된 내부 공간에 따른 새로운 입면은 층별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머무름을 최대한 노출할 수 있는 도시의 스토어프론트(storefront)가 된다. 새로운 입면과 가능성 기존 건물에는 ‘정면’ 즉, 얼굴이 없었다. 분명 도로와 접해 있으나 도로에서의 인상이 없었다. 반지하에 있던 주거 세대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담으로 창문을 가렸고 2층과 3층은 마주하는 건물을 피하듯 작은 창을 가졌고 계단실은 불투명했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삼각형 포인트 장식을 가진 유리문이 곧 대문이자 출입구이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던 불편한 장소였다. 붉은색 벽돌은 주변의 건물들이 문맥 없이 외부 마감을 뽐내는 동안 연관성을 잃었다. 입구를 북측으로 옮기면서 반 층 내려가는 전이 공간을 형성하고 이를 2층의 갤러리까지 수직으로 연결하면서 좁고 높고 깊은 주 출입구로 건물의 인상을 바꿨다. 1980~90년대 적벽돌 치장마감은 단열 보강과 더불어 완전히 다른 두 재료, 거친 천연석과 알루미늄으로 가리고 계단 형태의 반복적 기하학과 더불어 새로운 입면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알루미늄 클래딩은 매끈한 질감의 가벼운 기단부를 형성하면서 혹두기 천연석의 거친 질감으로 무게감을 더한 상층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글 stpmj 사진 배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