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쓰는 집

현장 프로그램 ㅣ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리노베이션

김승회

2021년 11월 6일 11:00AM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
사진_노경
사진_경영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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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하우스 진행 백남혁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진정한 박물관은 ‘시간’이 ‘공간’으로 변하는 곳이다.”

                                        - 오르한 파묵 

 


절박한 요청을 만나다
건축가 이희태의 설계로 1967년 완성된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은 한국 전통건축의 미학이 현대적인 건축언어를 통해 정교하게 완성된 건축물이다. 시원하게 뻗은 처마와 우아한 지붕선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은 한국 가톨릭 역사를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그 역할을 다해왔다. 그간, 여러 번에 걸쳐 설비를 보강하고 전시대를 업그레이드하는 등의 리모델링 과정이 있었다. 방문객이 연간 30만 명을 넘어서면서 박물관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하는 절박한 상황을 맞이했다. 

2018년, 설계를 시작하면서 살폈던 것은 박물관이 가진 한계와 가능성이었다. 전시 공간이 부족하여 소장품을 충분히 내놓지 못했고 기획전시를 상설전시장에서 열어야만 했다. 방문객이 급증함에 따라갈수록 혼잡해졌다. 항온항습 설비 공간을 확보하느라 완공 당시보다 천장이 매우 낮아졌다. 어두운 색조로 덧붙은 마감은 본래 박물관이 지녔던 풍부한 공간감을 크게 떨어뜨렸다. 현실을 파악할수록 해결해야 할 요청의 항목은 많아졌다. 그렇다고 건물이 커지거나 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주어진 볼륨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박물관의 기본 뼈대가 온전하다는 것이었다. 그 온전한 뼈대가 우리가 가진 가능성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다
우선 줄일 수 있는 것을 줄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학예실과 협의하여 박물관과 관계없는 소장품을 모두 반출하기로 했다. 10년 전 새로 만들어진 계단까지 들어내니 넓은 공간이 생겼다. 칸막이와 계단이 사라진 자리에 전시 공간을 두 배로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전시 면적을 추가로 확보한 것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전시 공간의 품격을 높이고 싶었다. 1967년 준공도면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설치된 천장을 걷어내면 상당히 높은 천장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천장 속은 항온항습 설비와 소방 설비로 가득 차 있어 천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설비시스템을 고안해야 했다. 새로운 설비 라인을 수직벽을 따라 재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천장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골조가 노출되도록 천장을 들어내니 커다란 볼륨이 새로 생겼다. 골조의 패턴이 공간에 생기를 주었다.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스카이라이트가 기적처럼 환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층고를 이용해 중층에 전시 공간 둘레로 순환하는 브리지를 매달기로 했다. 순환 브리지는 전시 공간을 추가로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근사한 공간적 오브제가 되었다. 지하 1층 전시 공간 역시 불필요한 칸막이와 계단을 치우고 답답하기만 했던 천장을 모두 걷어냈다.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천장의 골조는 공간에 리듬감을 만들어주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넓고 높고 환한 기획전시실을 별도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67년 완공 당시에도 가려져 있었던 박물관 내부의 콘크리트 골조가 이번 리노베이션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노출되었다. 박물관의 뼈대는 공간을 지탱하는 구조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전시 공간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50년 만에 나타난 구조의 뼈대는 전시 공간에 힘차고 아름다운 질서를 부여해주었다.


공간의 서사를 구축하다
비우고 확장하여 원하는 규모의 공간을 얻었다. 비워진 넓은 공간은 이제 그 내용을 요구한다. 박물관의 내용은 전시품을 통해 완성되지만, 건축 공간의 서사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박물관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박물관의 문을 열면 방문객을 환영하는 진입 공간에 들어선다. 안내 데스크 건너편, 목재 루버 뒤로 박물관의 전시 공간이 어렴풋이 보인다. 진입 공간을 지나 전시 공간으로 입장하면 높은 천장의 큰 공간을 만난다. 천장 중심으로 환한 빛을 내리는 커다란 스카이라이트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순교의 계시처럼 하늘로부터 내려온 온화한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기둥과 보로 이루어진 공간의 뼈대, 그 사이 벽체를 채우는 것은 따스한 느낌의 탄화목재이다. 힘찬 골조의 리듬과 온화한 목재의 질감으로 공간의 뉘앙스가 만들어진다. 철재 텐션로드의 팽팽함, 극도로 세장한 목재의 비례는 공간에 긴장감과 엄숙함을 부여한다. 공간 안에 배치된 소중한 전시물들, 정성으로 쓴 편지와 낡은 성경, 헌신의 징표들이 이 순교의 역사를 증거한다. 

상설전시 공간의 관람이 끝나갈 즈음, 순환 브리지를 향해 올라가는 계단을 만난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이다. 순교가 영적 도약의 한 형식이듯, 하늘을 향해 오르는 계단 역시 도약의 공간적 형식이다. 계단을 오르면 상설전시실 벽을 따라 순회하는 트랙 형태의 브리지를 만난다. 천장에 매달린 브리지는 관람객 자신이 지면으로부터 들려 있다는 느낌을 선사한다. 현실과 비현실을 동시에 경험하는 공간이다. 들려 있는 길을 걷는 행위, 그 자체가 박물관이 선사하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다. 관람객은 상설전시 공간에 놓은 전시물을 내려다보면서 순교의 역사를 돌이켜 묵상하고, 순회하는 발걸음을 통해 순교의 의미를 성찰한다. 오르고, 건너고, 순회하는 순례의 행위는 계단과 순환 브리지를 매개로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완성한다. 

공간의 서사는 상설전시실에서 하나의 완결된 줄거리로 결말을 맺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기획전시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기획전시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그 어두운 공간을 지나면 환한 전시장을 만난다. 기획전시실은 넓고 고요한 공간으로 관람객을 기다린다. 기획전시 공간은 미래의 다양한 기획전시를 위해 비워진, 무한한 가능성으로 계획되었다. 전시를 둘러본 관람객은 캐노피 아래 새로 마련된 출구로 인도된다. 따뜻한 느낌의 목재 벽이 마지막 공간을 온화한 분위기로 감싼다. 문을 열면 성지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박물관 외부 회랑으로 이어진다. 회랑을 따라 돌면서 관람객은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소나무가 있는 절두산, 반짝이는 한강의 물결, 우뚝 선 김대선 신부상이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성지의 현재, 박물관에서 경험했던 순교의 역사라 하나로 만나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시간이 된 공간
절두산 순교성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 절두산 마스터플랜을 수행하면서 성지 주변을 살폈다. 동서로 가로지르는 강변도로로 인해 절두산은 합정동과 단절되었고, 당산철교가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절두산은 다시 반 토막이 난 상태였다. 가톨릭 순교의 역사가 그렇듯 절두산도 온갖 고난을 겪고 있었다. 마스터플랜보다 성지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회복하는 것이 더 절실했다. 서울시에 강변도로를 지하화하고 그 위에 공원을 만드는 기획안을 제안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기획안이 받아들여져 성지의 모습을 일부 회복하게 되었다. 다시 절두산과 인연을 이어가게 된 것은 2018년, 26년 만에 절두산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의 리노베이션. 어렵고 부담스러운 과제였다. 숨겨져 있었던 구조의 뼈대를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하늘을 향한 계단과 공중에 떠 있는 회랑, 하늘에서 내려오는 찬란한 빛,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보인 골조의 리듬, 그 아래 넓고 환한 전시실… 새로운 공간이 축복처럼 다가왔다. 본래 있었던 것과 새로 만들어진 것이 하나로 만나 순교의 서사로 완성되었다. 역사가 공간이 되고, 다시 그 공간이 시간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사건이 되었다. 

김승회 사진 노경, 경영위치

설계: 김승회(서울대학교) +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설계 담당: 백남혁
위치: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6
용도: 종교시설
대지면적: 9,137㎡
건축면적: 986.21㎡(변경 없음)
연면적: 1,773.50㎡(중축 82.47㎡)
규모: 지상 2층, 지하 2층
건폐율: 10.79%
용적률: 11.7%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연와조, 철골조
내부 마감: 애쉬탄화목, 석고보드, 저철분유리, 갈바륨 강판
구조 설계: 한구조엔지니어링
시공: 이안알앤씨
기계 설계: 정인엠이씨
전기 설계: 지성설계 컨설턴트
설계 기간: 2019. 1. ~ 2019.10
시공 기간: 2020.6. ~ 2020.11
건축주: (재)천주교서울대교구 유지재단

김승회(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김승회는 1995년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였으며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작품으로 이우학교, 문학동네, 이화외고, 롯데 부여리조트 등이 있다. 김수근문화상, 한국건축가협회상, 서울시건축상, 이원환경건축∙조경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Map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
건축가 김승회
일시 2021년 11월 6일 11:00AM
위치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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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House 고쳐 쓰는 집, 오픈하우스서울 x 기린그림 오픈하우스서울 2021의 올해 주제는 <고쳐 쓰는 집>입니다. 지난해 코로나 19로 돌아본 <집의 공간>에서 효율과 기능에 집약된 주거에서 벗어나 내외부 공간의 중간지대를 탐색했던 오픈하우스서울은 올해 집을 고쳐 쓰는 행위를 통해 집의 수명을 늘리고 공간의 가치를 발견하며 이를 새로운 형식으로 확장하는 작업들을 주목합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집을 원형에 더 가깝게 수리하고 집의 수명과 의미를 이어가고 있는 수졸당과 주변의 재개발 사이에서 방치된 다가구 주택을 사무실과 스튜디오로 변모시킨 Face-lift 상도와 전봇대집, 의뢰인의 어릴 적 기억이 담긴 50년대 주택을 게스트하우스로 변경한 보눔 1957, 60년대 주택을 과감히 수리해 아늑한 집을 만들어낸 예진이네집, 그리고 100년된 윤동주가 머물렀던 연세대학교 핀슨홀을 리노베이션해 윤동주기념관으로 변모시킨 프로젝트까지, 집을 고치는 의미와 과정을 기린그림의 영상으로 만나봅니다. 또한 리모델링,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 프로젝트를 현장에서도 만나볼 예정입니다.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고쳐 쓰는 집>을 만나보세요.   온라인 프로그램  영상 수졸당(守拙堂)_승효상 영상 전봇대집(The Pole House) _조윤희, 홍지학 영상 Face-Lift Sangdo_이승택, 임미정 영상 보눔 1957_김찬중 영상 윤동주기념관_성주은, 염상훈, 최선용 영상 예진이네 집수리_김재관    현장 프로그램 (10월 22일 오후 2시 예약 오픈)  11월 1일 오후 1시 서울공예박물관_송하엽, 천장환, 이용호 11월 6일 오전 11시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리노베이션_김승회(진행_ 백남혁 경영위치) 11월 7일 오후 1시, 3시 윤동주기념관_성주은, 염상훈, 최선용 11월 8일 오후 2시 해방촌 갤러리 더 월_김승회(진행_ 이예슬 경영위치 팀장) 협력 프로그램 <빈집의 재발견> (10월 22일 오후 2시 예약 오픈)  서울특별시 집수리지원센터 × 오픈하우스서울 10월 30일 오후 2시 건축가 김중업의 사직동 주택 ㅣ 진행_안창모 교수  10월 30일 오후 4시 건축가 김중업의 사직동 주택 ㅣ 진행_김현섭 교수
고쳐 쓰는 집 영상 ㅣ 수졸당 (守拙堂), 승효상 1986년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수근 선생께서 남기신 말씀으로 나는 공간설계사무소를 3년간 이끈 적이 있다. 선생이 부재에도 선생의 건축을 계속할 수 있다며 분투하였지만 늘 허무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 선생이 남기신 울타리에서 나오고 만 때가 1989년 말이었다. 15년간 선생의 문하에서 익힌 건축의 방법은 너무도 내게 익숙한 것이었어도 그걸 확인해줄 이가 없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내 건축을 찾겠다고 독립한 나는 내 건축을 전혀 몰랐고 심지어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15년은 김수근건축에 철저히 동화되어 내 신체가 되기까지 한 족쇄였지 않았을까?  내 건축을 찾기까지 아득한 방황과 결렬한 자아 부정 등의 과정을 통해 신음하듯 뱉은 게 ‘빈자의 미학’이라는 용어였다. 선언이라고 해도 된다. 그때까지 내 모든 지난날들을 용광로에 넣어 녹여 겨우 추출한 단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업한 게 수졸당이다.   그 이후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물론 대단히 많은 작업을 그사이에 마쳤으며 여전히 건축의 현장에 머물러 있는 나에게 그간의 세월은 실패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과도하게 말하면 내가 작업한 건축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여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작업이 이 수졸당이다. 내가 지금 얼마만큼 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하며, 그럴 정도로 수졸당은 내 건축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1993년에 완공되어 28년간 삶의 때를 묻힌 수졸당이 처음으로 대청소를 하여 원형을 다시 찾았다. 그 사이에 지가가 어마어마하게 올라 주변은 죄다 상업용의 시설로 변했지만, 이 집의 주인인 유홍준 교수는 그 세찬 상업주의에 저항하였고 이제는 이른바 ‘현대의 유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믿기로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을 이 땅 위에 서서 우리가 살았던 기억을 이으며 전하게 된다. 수졸당은 그래서 이미 역사며 문화의 한 부분일 거다.   아랫글은 수졸당을 지은 직후인 1993년에 쓴 것이다.    오랜 도시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수없이 많은 건축물이 이 땅을 빼곡히 메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건축이 여전히 세계의 건축과 괴리를 느끼게 하고 있음과 한국문화의 중심에서도 멀리 있음을 고백해야 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다른 몇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 구조를 지배한 잘못된 정치행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더불어 균형 잡히지 못한 부의 축적에만 몰두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가치가 왜곡된 그런 사회에서 빚어지는 건축의 모습은, 더 높이 만, 더 크게만, 더욱 위엄 있게 만 보이기 위한 것들에 더욱 큰 관심을 두게 하였고, 그 결과 그 속에서의 삶의 의미는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갑자기 축적된 부가 헛된 장식과 구호에 쏟아 부어진 결과, 거리를 메운 건축은 찬란하되 껍데기뿐이었고 화려하되 졸부의 헛된 욕망을 나타내는데 만 골몰하였음에 우리의 삶은 자꾸만 일그러지고 또한 박제될 그러한 위험에 처해 있음도 아울러 직시해야 한다.  우리네 조선의 선비들이 빚은 도시와 건축은 어떻게 저토록 높은 격조와 품위를 가졌었나. 그것의 바탕은, 물질보다는 정신에, 욕정보다는 이성에 더욱 큰 가치를 둔 청빈의 정신이었을 터이며, 그의 위에선 선비정신은 조선 500년을 지탱케 하며 우리의 뿌리가 되어 있음을 다시 기억해 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자기의 땅보다는 남의 것을 더 채워주려 하고, 더 작은 땅을 점유하려 하며 그것도 남과 같이 쓰기를 원하는 그런 염치와 절제의 건축을, 사회와 고립된 높은 벽체로 싸인 그림 같은 집이 아니라 이웃과 연결된 보다 낮은 그런 집을, 육신이 편안하기보다는 정신이 맑기를 원하며 육체를 왜소화시키는 기능적인 집보다는 오히려 반 기능적이어서 삶 자체가 진솔해지는 그런 공간을, 우리로 하여금 사유케 하고 스스로를 반추시키는 배경이 되는 그런 지적 벽면을, 이제 우리의 도시에 다시 세워야 함을 믿는다. 이 아름다운 산하와 반만년 역사를 이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 저런 못난 건축 속에서 그 질을 보장받을 수 없다.  세기말을 앞둔 지금, 그러한 일그러진 편린과 대립해야 하는 우리의 정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것은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까닭이 된다. 보잘것없는 집'이라는 뜻의 이 집은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를 위한 집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유 교수는 한국 미술사에 남다른 식견을 가진 미술평론가이며, 또 그는 민중의 삶에 애착을 가진 지성이다. 그는 나에게 설계를 의뢰하기까지 여러 번 망설였다고 한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대한 불신 등이 그러한 망설임의 대부분이었는데 이를테면 비싼 것, 편하지 않은 것 등이 그것이다. 유 교수는 이러한 것이 선입 관념일 수 있음을 알고 나에게 이런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설계를 의뢰하였으며 동시에 나의 건축적 의지에 결코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고, 이 약속은 끝까지 지켜졌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가치가 우선된 토지, 주거 정책으로 인하여 크게 잘못된 주택관을 가지게 되었는데 주택을 사용에 대한 관념보다 소유개념을 더욱 중시한다는 것으로 그 결과 집 속의 공간이나 그 속에서의 삶보다는 집을 구성하는 벽체와 지붕의 모양 등에 더욱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얻어진 주거형식이라는 것이 주어진 필지에 높은 담을 쌓고 자기를 보호받기 위해 그 담 위에 철조망을 또 두르고 그 속에 아파트처럼 기능적인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 부분은 `저 푸른 초원'을 즐기기 위해 잔디 깔고 나무 심는 그러한 것인데, 이러한 집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이웃이 있을 턱이 없고, 가족의 아이덴티티가 있을 수 없으며, 더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 또한 오히려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와지붕 시대 이후의 참다운 주거문화를 실현해 본 적이 없으며 오로지 주택이 가족 신분에 대한 상징으로서 여겨져 온 결과 껍데기만 있는 졸부의 주거문화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집 장사와 개발업자들에게 상당 부분 있지만, 그렇다 하여 건축가들의 책임 또한 면하기 어렵다.  내가 이 집을 설계하면서 가진 의문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시 도시주택의 전형을 만들 수 없을 것인가. 주택은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나. 주택에서 삶의 형태와 공간의 형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주택은 기능적이어야 하나. 이 시대는 어떤 주거형식을 요구하는가. 이 집이 완성되면서 이러한 의문문이 얼마만큼 그 해답을 구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취한 몇몇은 요즘 나의 건축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는 빈자의 미학에 대한 구체적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였고, 그 성취는 대부분 유 교수가 전적으로 건축가를 신뢰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며 그와 설계와 시공 기간 중 내내 나눈 여러 이야기가 오래 기억될 것이다. 1993.  글 승효상  사진 김잔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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