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Studio

아르키움

김인철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사무실과 자택을 겸하고 있는 건축가 김인철의 작업 공간. 김옥길기념관, 웅진씽크빅, 어반하이브, 호수로 가는 집, 캄보디아 바탐방교당과 네팔의 바람을 품은 돌집 등 현대성과 지역성을 넘나드는 건축가 김인철의 작업공간을 둘러보고 그의 건축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특히 이번 오픈하우스서울 프로그램에서 건축가는 자신의 사무실 뿐만 아니라 건축가 자택을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건축가 김인철은 홍익대학교 건축과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엄덕문 문하에서 실무를 익힌 뒤 아르키움archium을 개설하고 건국대, 홍익대 겸임교수를 거쳐 중앙대 교수로 재직한 후 서울시립대 겸임교수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전통과 풍토에 바탕을 둔 ‘없음의 미학’을 화두로 작업하며 김옥길기념관, 웅진씽크빅, 어반하이브, 호수로 가는 집으로  건축가협회상, 김수근문화상, 서울시건축상을 수상했다. 한국건축3인전, 헤이리아트밸리건축전, 파주출판도시건축전, 한국현대건축전 megacity network 등을 통해 작업을 발표했다. 4•3그룹에 참여했고 국가건축정책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서울건축포럼의 의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건축작품집>, <김옥길기념관>, <대화>, <공간열기>, <바람을 품은 돌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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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스페셜 프로그램 구 러시아공사관 구 러시아공사관은 1884년 러시아와 조선 사이에 조러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1890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원래 건물은 벽돌로 된 2층 구조로 한쪽으로 탑을 세웠으며 입구에는 개선문 형식의 아치문이 있었다. 이 건물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A.I.Sabatin, 1860~1921)이 설계를 맡았는데, 그는 1883년부터 조선정부에 고용되어 독립문, 덕수궁 중명전 등 다수의 근대 서양식 건축물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높은 언덕에 르네상스식으로 건축된 러시아공사관은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았으며, 당초 부속건물이 추가로 4채 건축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1896년 이곳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여 1년 가량 머물게 되는데 이를 아관파천이라 한다. 이로써 개혁을 주도하던 친일내각은 친러내각으로 교체되었으며, 고종이 이곳에 머물렀던 기간 동안 국제정치의 주요한 무대가 되었다. 이후 고종은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그곳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1950년 6·25전쟁의 여파로 외벽 일부와 3층 전망탑을 제외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1973년에는 전망탑 부분에 대한 보존처리가 진행되었으며, 1981년 이 일대의 발굴과정에서 러시아공사관의 지하층 구조가 밝혀졌는데 이때 전망탑의 동북쪽에 지하통로로 알려진 유구가 발견되었다. 사적 제253호이다. 출처 및 사진 : 서울중구청, 문화재청 제공   주소 서울 중구 정동길 21-18 정동공원 이용 시간 제한 없음 휴관일 없음 이용요금 무료 문의 서울 중구청 www.junggu.seoul.kr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스페셜 프로그램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한 시대”,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한국에 오신 지 2년이 되어간다. 한국에 오기 전 서울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2003년과 2004년에 처음 한국을 짧게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이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4년 후인 2017년에 다시 왔을 때 변화한 서울의 모습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여러 고궁이 복원되고 녹지가 조성되어 수많은 매력적인 공간들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주한 영국대사로 부임하기 전, 2017년 하반기에 서울에 머물며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때 여러 장소를 방문하여 서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한 곳을 고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사관 옆에 있는 덕수궁은 산책하기 매우 좋다. 생각에 잠겨야 할 때 종종 덕수궁을 걷곤 한다. 가끔은 연필과 스케치북을 챙겨가서 덕수궁을 스케치하기도 한다. 서울의 박물관과 미술관도 매우 좋아한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청계천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 그리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자주 간다. 각 박물관의 특별전도 다 챙겨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오기 전 옛 서울의 모습을 매번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돈의문박물관마을도 찾아가기 좋은 장소다. 광장시장과 같은 서울의 전통 시장도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동대문 시장의 수많은 옷과 액세서리의 종류는 갈 때마다 매번 놀랍다. 야구팬이기 때문에 잠실 야구경기장 또한 내 리스트의 상위 10위에 항상 포함돼 있다. 이 모든 장소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경험은 바로 인왕산 등산이다. 인왕산에 오르면 서울의 멋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그의 삶과 시를 감상하는 것 또한 매우 감명 깊었던 경험 중 하나다.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위치한 서울시 중구 정동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과거 한국에서 영국대사관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사관도 영국대사관이 유일하다. 정동이라는 장소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조선 시대와 대한제국의 수많은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중구 정동에서 살며, 또 일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다. 그 시대에 건축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축물 대부분은 현재 박물관 또는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여 영국의 선대 외교관들이 130여 년 전 사용했던 건물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역사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정동에는 영국문화원도 있다. 한국 최초의 현대 교육 기관 중 한 곳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위치한 이곳에서 영국문화원은 다양한 연령층에 영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사관저가 1890년에 지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벽돌과 석재를 이용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서양식 건물이다. 그로부터 130여 년이 흘렀고, 보기 드물게 여전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건축, 디자인 강국으로 유명한 영국인데, 혹시 새로운 건축 디자인에 대한 욕심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영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자국의 디자인 및 건축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와 전통 또한 존중한다. 선대 외교관들이 한영 관계를 구축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건물을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우리의 파트너들을 환영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종종 서울시청 서소문 건물 13층에 올라 정동의 전경을 눈에 담는다.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 사이에 영국 관저가 자리한 것을 보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이러한 건물을 현대식 건축물로 바꾼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한국에 부임한 후부터 계속 살고 계실 텐데, 대사님과 가족들은 어느 공간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불편함과 좋은 점은 무엇인지, 1890년에 지어진 건물에 산다는 것에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관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1층의 테라스와 2층의 발코니이다. 두 곳 모두 관저의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이며, 2층 발코니에서는 남산도 조금 보인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더욱 사랑받던 장소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테라스와 발코니는 복잡한 도시 속 휴식과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공간이다. 관저 인테리어는 현대 생활방식을 따라가기 위해 여러 차례 리모델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19세기 건축 양식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스페셜 프로그램 경교장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선생이 1945년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1949년 6월 26일 암살당할 때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1938년에 건립된 이 건물의 명칭은 당초 죽첨장이었으나 김구선생의 거처로 사용되면서 근처의 개울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자유중국대사관 관저, 국군의료진 주둔지, 월남대사관 관저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양관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답고 1층의 출창과 2층의 들임 아치창을 이용한 단아한 외관이 일품이며, 김해경(시인 이상)이 졸업한 경성고공 출신으로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김세연(1897~1975)이 설계하여 1930년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으나, 건물의 우측면과 후면은 병원의 신축건물과 연결되었으며 내부구조도 병원용도에 맞추어 개조된 상태이다. 출처 및 사진 제공 : 문화재청   주소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강북삼성병원  이용 시간 9:00 – 18:00 휴관일 월요일/1월 1일 휴무 이용요금 무료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스페셜 프로그램 “대사관은 일종의 무대이자 만남의 장소”,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 주한 스위스 대사 한국에 오신 지 3년이 되어 가는데, 한국에 오기 전 서울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는지, 또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지 궁금하다. 주한 스위스 대사로 정식 근무하기 전, 서울에 익숙해지고 또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짧게 머물다 간 적이 있다. 나에게 서울은 동북아시아가 아닌 매우 새로운 아시아였다. 서울은 흥미로운 도시라 좋아하는 장소를 꼽자면 매우 많다. 우리는 서울 안에서도 중심지에 살고 있어서 이 일대를 산책하듯 걸어 다니는 것을 즐긴다. 도시에서의 특권이자 가장 호사스러운 행위는 바로 시내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점 같다. 나무와 빌딩 등 온갖 것들을 관찰하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난 경험이다. 얼마 남아있지 않아 아쉽지만, 한국의 전통 건축도 좋아한다. 예를 들어 도시 안에 있는 종묘를 정말 좋아한다. 그 외에 인근의 작은 장소들도 좋아한다. 만약 사람들과 사람들이 살았던 곳을 알고자 하고,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인상을 얻고자 한다면, 시내를 걸으며 관찰하는 것이 좋다. 비록 서울은 유럽의 소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도시지만, 도시산책자이면서 도시관찰자로서 서울 생활에 큰 즐거움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스위스대사관이 정식 개관했다. 초기에 신축이냐 이전이냐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 부지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새 건물을 짓게 된 중요한 동기가 있었는가?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항상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옵션도 있고 제약들도 있다. 당시 명백한 사실은 전임자들이 보기에 기존 대사관 건물이 너무 작고, 낡았으며,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만약 부지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건물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복원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운 대사관 건물을 지을 것인가? 더 나아가 이 부지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대사관 부지의 경제적 가치가 높으니 그냥 땅을 팔고 심플하게 도심의 고층 오피스 건물 공간을 임대해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거주지를 매입할 것인가? 그것들은 고민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결국, 기존 대사관 건물은 지속할 수 없고, 우리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양국 관계의 밀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고, 한국도 G20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점차 중요한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한국은 스위스의 중요한 경제, 문화, 과학기술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한국 내 스위스의 존재를 업그레이드하고, 좀 더 강화하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물에 투자하게 되었다. 또 스위스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대사관이 이 자리에 둥지를 튼 지 40년이 넘었고, 그동안 스위스는 한국과 우호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해왔을 뿐 아니라 좋은 파트너 관계도 형성해왔는데 왜 굳이 장소를 옮겨야 하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웃 환경이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외부환경은 개발로 인해 바뀌고 있는데? 우리도 역시 변화할 거야.’ 그래서 가장 합리적인 합의점은 부지를 그대로 유지하되 새로운 건물을 짓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타워를 짓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대사관은 클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때마침 우리는 기존 건물의 디자인이 건축물로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소는 그대로 가져가되 건물을 바꾸자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국제현상공모를 시작했다. 스위스대사관 건물을 국제공모를 통해 짓는다. 모스크바도 그랬고, 베이징도 곧 그럴 것이다. 스위스는 물론이고, 유럽 국가, 아프리카, 미국, 아시아 건축가들이 참여해 경쟁한다. 서울 프로젝트의 경우 70명이 넘는 건축가들이 참여했었다. 스위스대사관의 주변은 급변하는 서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주변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결과적으로 스위스대사관이 돈의문 일대 땅의 흔적을 기억하는 곳이 된 셈이다. 대사관과 변화된 주변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일종의 대화, 과거와의 다이얼로그’라고 생각한다. 지금 건물은 모던한 빌딩이지만 과거의 일부를 여전히 반영하고 있다. 최종 당선작의 제목은 “스위스 한옥”이었는데, 재미있는 부분은 스위스에는 한옥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마당이 있는 한국 전통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스위스 건물인 것이다. 내 생각에 건축가는 한국에 한국과 아무런 상관없는 단순한 스위스 건축물을 짓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설계 초기부터 주변 환경과의 다이얼로그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들은 한국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스위스적이지만 동시에 한국적이면서도 이곳 환경과 잘 어울리는 것을 원했다. 보다시피 스위스대사관은 전통 한옥이 아니다. 한옥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물이다. 나는 이곳의 다이얼로그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면서도 주변의 다양한 요소들과 서로 대위(counterpoints)를 이룬다는 것이 흥미롭다. 30-40년 전에는 이곳에 거의 비슷한 모양의 한옥 건물들만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모두가 변해가고 있지만 어떤 것들은 그대로 있기도 하고 우리도 변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지를 경제적 논리로 접근할 생각이 없었고, 우리에게 충분할 정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곳의 가장 큰 호사는 주변에 고층빌딩이 없어서 머리 위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다시 말해 우리는 현대적으로 변해야 했고, 다른 형태와 규모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획일적인 것은 싫었다. 결국, 우리의 새로운 시도가 언덕진 이곳의 지형이라든가 주변 개별 건물들, 도시를 향해 열려 있는 건물 배치,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작은 주변 동네 등등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음악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치 바흐의 다성(polyphonic)이나 대위법(counterpoint) 같은 것이다. 즉 동일한 한 가지만 있는 것보다 다양한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고 건축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스페셜 프로그램 근대 및 왕실의 국제 교류 공간 국제 교류의 장은 국가 간 교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간 교류의 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며, 특히 근대 시기에는 선교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교류가 이어져 왔다. 근대의 선교기지와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근현대 시기의 학교는 서양 문물의 전파와 함께,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고 맞이하는 교류의 장이 되었다. 대표적 근대 선교기지와 교육기지를 살펴본다. 또한 근대국가로 변모하기 위해 열강들과 치열한 외교 전쟁을 펼쳐야 했던 대한제국의 공간들은 근대를 향한 꿈과 좌절이 배어있는 곳이다. 경운궁(현 덕수궁)을 중심으로 한 대한제국의 외교 장소와 건축물을 통해 대한제국 국제 교류 공간의 근대성을 살펴본다.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스페셜 프로그램 외교의 최전선이자 ‘도시 안의 또 다른 영토’인 대사관은 현대의 대표적인 국제 교류 공간이다. 대사관의 건축은 그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드러내는 동시에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반영해 문화 교류의 상징을 담기도 한다. 영국 빅토리아 양식에 인도의 건축 스타일이 더해진 129년 된 영국대사관, 1962년 한국의 거장 김중업의 대표작인 프랑스대사관, 1976년 주재국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은 최초의 대사관저인 미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 2001년 한국의 건축가 장윤규와 희림건축이 로제타스톤을 재해석해 설계한 이집트대사관, 그리고 2019년 한옥을 재해석해 현대적인 건축물로 승화한 스위스대사관까지, 역사적 내력과 건축적 탁월함으로 주목받는 대사관과 대사관저 6곳의 문을 연다.   Special OPENHOUSE 프랑스대사관   9월 20일 – 22일 스위스대사관   9월 21일 영국대사관       9월 27일 이집트대사관   9월 28일 캐나다대사관   9월 28일 미국대사관저   9월 29일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스페셜 프로그램 VISIT YOURSELF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장과 연계해 나만의 답사 코스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국제 교류 공간들을 소개한다.
Report Report 연희동 J Studio House, 서승모 연희동 J Studio House, 서승모 연희동 골목길 24평의 아담한 땅에 지은 집인 오묘당은 한 층 바닥이 10평 남짓으로 다섯마리의 고양이와 같이 사는 집입니다. 즐거운 오픈하우스의 현장을 지금 확인해보세요! 사진_오픈하우스서울 제공
DDP 5주년 기념 SPECIAL TOUR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미래주의적인 공간, DDP, 하지훈 가구디자이너 서울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DDP,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DDP가 시민들에게 어떤 장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는 하지훈 가구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DDP와의 첫 만남을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DDP가 개관 당시 가구 컬렉션을 했는데, 제 의자도 컬렉션에 포함되어서 그때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이후 DDP에서 열린 <백두대간 와유(臥遊)> 전시에도 참여했어요. 제가 디자이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게 되었어요.   DDP에 자주 가시나요? 자주 가죠. 전시 보러 가는 경우가 가장 많아요. DDP가 생기면서 가장 좋은 것은 서울에 디자인 전시를 비롯해 수준 높은 전시를 유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가장 반가운 부분이에요. DDP에서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둘레길.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전시공간이 없어요. 전시공간으로서  안 좋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식의 공간이 어디에도 없으니까 독특한 전시를 할 수도 있어요. 건물 안에 길이 있다는 건데, 그것이 자하 하디드의 건축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보통 화이트 큐브 전시에서는 공간 전체가 한눈에 다 보이고, 전시품들이 공간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둘레길은 시선 안에 공간이 한꺼번에 다 드러나지도 않고, 마치 내가 산책하듯이 걸으면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잖아요. DDP만이 가진 굉장히 유니크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공간이 갖는 가치, 혹은 건축적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우리나라는 관념적인 것에 너무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매번 일하면서 느끼지만, 심지어 제가 하는 일도 항상 관념과 싸움이라고 볼 정도예요. 사람들이 가구를 판단할 때, 이 의자가 편한가를 보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의자 디자인에서 과연 사람이 중심이냐, 아니면 조형적인 것이 우선이냐 했을 때, 조형성이 우선시 될 수도 있다는 거죠. 모든 것을 하나의 가치로 판단할 수는 없어요. 예술과 디자인은 어떻게 보면 명확한 답이 없는 분야라는 거죠. 그래서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에 대해 구불거리는 벽 때문에 기능적으로 공간 효율이 떨어진다고 불평한다면 그건 잘못됐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DDP 같은 건축물은 도시 안의 아주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서 더 많은 가치를 갖는 것 같고, 하나쯤은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봐요. 모든 걸 다 공간 효율성으로만 따지다 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건조하겠어요. 이렇게 크레이지한 공간도 있어야, 사람들이 DDP를 보면서 어떤 예술적인 감동을 얻는 거죠. 이것도 기능보다는 조형성이 갖는 사회적인 기능이자 의미라고 봐요. 저는 그런 게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요. 물론 다른 개념의 건축물들도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같은 것이 그래요.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공간이지만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과는 완전히 양쪽 끝단에 있는 거예요. 터에 대한 것, 그리고 기무사 건물을 유지한다거나 아니면 거기에 원래 있었던 역사성을 부드럽게 이어서 만들어나가는 건축이 있는 거죠. 반면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정체성과 개성, '– 주의적'인 것이 강한 건축물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그 도시가 풍성해 지는 거죠. 그래서 DDP가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거예요. 서울에 그런  공간이 없거든요. 물론 처음에는 말이 많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모든 관광객이 둘러보는 공간이 됐단 말이에요. 그게 중요해요. 저는 덴마크에서 공부했는데, 덴마크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건축에 투자를 많이 하고, 특히 주로 공공건물에서 상징성을 풀어내요. 도서관 같은 거요. 저는 그렇게 풀어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공공건물은 왜 맨날 재미없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게 오히려 더 친환경적이고, 돈을 남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투자를 할 수 있는 곳은 투자를 많이 해서 오랫동안 사회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공공건물은 여러 사람한테 의미를 전달해 주는 거잖아요. 사람들에게 ‘저런 건물이 들어서니까 주변 공간이 어떻게 바뀌고,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하는 것들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공공건물이 가장 효과적인 거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관념적으로 공공건물에는 돈을 많이 쓰면 안 된다는 둥 여러 가지 저해 요소가 있어요. 관념과 싸움에서 그걸 어떻게 관철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죠. 그게 예술이고요. 싸워나가는 거죠. 다른 생각을 갖고 간다는 것이 필요해요. 그래서 DDP가 중요한 겁니다. DDP는 우리나라의 건축에 대한 관념을 깨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게 틀릴 수도 있다는 것들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건축만큼 많은 향을 줄 수 있는 게 어디 있어요. 도시와 건축의 관계에서 또 도시의 풍경 측면에서, 서울 안에서 DDP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정답은 없어요. 어느 공간에 외계 우주선이 추락한 듯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도 공간을 구성하는 데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DDP는 그 공간에 대한 주변 것들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공간은 아니에요. 충격적인 공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사실은 그런 공간들이 우리나라에는, 서울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와 건물들이어서 공간이, 도시가 재미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잖아요. 그런 공간에서 이렇게 충격을 줄 수 있고, 조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해요.     DDP는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복합문화공간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모두 DDP와 나름의 접합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디자인계 내에서 DDP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 경우는 DDP가 있어서 안심하게 돼요. 내가 지금 DDP와 뭔가 하지 않더라도 ‘DDP가 있으니 언제든 거기서 무언가를 하면 돼’ 라고나 할까요.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디자인 분야에서 뭔가 안심할 수 있는 든든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또 DDP에 관해 이야기할 때 패션이니 디자인이니 그런 것은 상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안 좋은 부분 중 하나가 자꾸 공예, 디자인, 예술, 패션, 건축 등 분야를 나눈다는 거예요. 그걸 왜 나누나요. 장르가 무너진 지가 언젠데요. 오히려 이제는 장르 구분하지 않고, 확실하게 DDP라는 공간의 퀄리티에 맞는 전시 기획을 하면 좋겠어요. 퀄리티 있는 전시들이 잘 필터링 되어서 DDP에서 계속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다른 기획을 하는 것보다 좋은 전시만 계속 보여줘도 DDP의 역할은 다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 가장 자주 회자되는 화두가 플랫폼이라는 단어입니다. 앞으로 DDP는 그 자체로서 어떤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인 산업과 연계해서 기대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DDP에 가면 전시뿐만 아니라 콘텐츠가 많아야 해요. ‘주말에 우리 어디 갈까?’ 했을 때 DDP에 가면 하루를 온전히 그곳에서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어렵죠. 수익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를 안 하고 가도 충분히 볼거리가 있어야 해요. 처음에는 건축물을 보러 갔다가도 두 번째부터는 이전과는 다른 즐길 거리, 즉 콘텐츠가 계속 있어야 하는 거죠. DDP의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해요. 요즘은 백화점만 해도 푸드코트에 전국 맛집들을 불러 모으잖아요. 그러니까 DDP 안에서도 다른 공간에서 볼 수 없는 전시라든지 아니면 F&B 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한 기획이 필요한 거죠. 어려운 문제예요. 사람도 필요하고요. 이런 걸 예술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대미술관을 보면 큐레이터 제도가 있잖아요. 외부기획자도 있고요. 다시 말해 내부에서 모든 기획을 다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예산이 있으면 그 예산 안에서 좋은 기획을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거 같아요. 그럼 부담 없이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DDP가 비판 받는 이유는 그 좋은 공간을 가지고 왜 그렇게밖에 못하냐는 내용이 가장 많을 거예요. 저는 오히려 디자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예술과 문화가 더 어우러지면서 장르에 좀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5주년을 맞은 DDP에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더 오래된 것 같은데 5주년밖에 안 됐네요. 저는 이 점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DDP 주변에 여행용 가방 끌고 다니는 외국인들이 매우 많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저는 역시 DDP를 만든 게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앞을 내다보고 투자를 좀 더 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여기서 머물 수 있고, 한국, 서울을 방문하게 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죠. 물론 앞으로 풀어야 하는 숙제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우리의 문제는 항상 너무 조급하게, 한 번에 다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니 그것만 조심하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DDP는 오랫동안 그 장소에 머물러 있을 테니 한 달, 일 년,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지면서 건축의 완성도에 걸맞게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이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이너뿐만 아니고 모든 서울시민이 격려와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OHS 진행 최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