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HOUSE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최욱 시장공관을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 센터로 리노베이션한 것이다. 1941년에 준공된 적산가옥(옛 시장공관)의 외관은 당시 근대식 일본 본토 주택의 전형을 갖추고 있으나 구조 및 벽체 구성 등의 기술적인 부분은 재래식 구법과 한국인의 솜씨 등이 혼재된, 일본에서는 보기 어려운 혼합형 건축물이다.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계획은 세계유산제도를 존중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리노베이션하였다. 원형에서 증·개축된 부분은 제거하여 원형 배치 회복을 원칙으로 한다. 기둥 및 천장 등의 주요 부재의 원형은 보존하고 구조보강용 부재와 기타 새로운 재료는 원형의 구조, 구법 및 재료와 구별되도록 한다. 대지와 건물의 관계를 유지하되, 지속가능한 사용을 위하여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을 위한 활용(전시안내센터로서의 기능)을 추구한다. 글 원오원아키텍츠  사진 ONE O ONE factory 원오원아키텍츠 http://101architects.com 최욱 1963년생.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dottore in arch.)에서 건축설계 및 이론을 공부하였고 macdowell colony (u.s.a.), Valparaiso foundation (spain)에서 펠로우쉽을 받았다. 현재 ONE O ONE architects의 대표이다.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 2007년 선전-홍콩 비엔날레에 초대되었으며 대표작으로 학고재 갤러리, 두가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 등이 있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2013 DFAA(Design For Asia Awards)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으로 2014 김종성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OPENHOUSE 계동 배렴가옥 계동 배렴 가옥(등록문화재 제85호)은 서울・경기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튼 ㅁ자형 근대 한옥(대지 257.9㎡, 연면적 98.78㎡)으로 1940년대에 지은 집이다.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1904~1948)가 말년을 보냈고, 1959년부터 1968년까지 화가 배렴이 기거하였다. 제당 배렴(1912~1968)은 실경수묵산수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한 화가로 해방 후 전통회화의 전통성을 되찾는 데 힘썼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홍익대학교 교수 등 미술계 중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배렴이 살던 시기에는 사랑채로 들어가는 별도의 출입구(솟을대문)가 있었고, 대문과 안마당 사이에는 담을 두어 대문을 들어왔을 때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목련나무, 감나무, 매화나무 등 나무를 키웠으나 지금은 목련나무만 남아있다. 배렴이 이 집에서 세상을 뜬 뒤 가족들이 1983년까지 살았고, 이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2001년 SH공사에서 매입한 뒤 임대하였고, 숙박시설로 활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2017년부터 서울시가 역사가옥으로 개방하기 위해 공간 구성을 새롭게 하였다. 2018년 배렴 50주기를 맞아 열리고 있는 기획전 ‘수묵에 묻힌 인생’에는 배렴의 초기 작품과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해에 그린 산수화, 손때가 묻은 붓과 안료, 처음 공개되는 조선미술전람회 훈장과 상장 등 유품이 전시된다. 장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9 이용시간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공휴일 문의 02-765-1375 https://blog.naver.com/00hanok http://instagram.com/00hanok 글 사진 내셔널 트러스트
OPENHOUSE 백남준 기념관, 최욱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하는 백남준 생가 터 중 일부를 서울시가 매입하여 서울시립박물관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곳이 백남준 기념관이다. 대상지의 건축물은 50여 년이 지난 도시형 한옥으로 백남준 생가의 흔적은 없고 필지의 일부를 점유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장소는 주민공동체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공존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카페는 주민공동체가 운영하며 공간은 주민들의 사랑방의 역할을 하며 기념관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한다. 마당은 두 협의체의 공유공간이다. 한옥을 기념관으로 만들며 세운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한옥의 목조 주요 부재를 드러냄을 우선으로 한다. 창호나 실내 칸막이 등 필요 기능에 의해 형성된 과거의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다. 도시형 한옥의 생명은 마당을 구심점으로 이루어짐으로 마당과 내부와의 연계에 집중하여 단면 계획에 섬세한 정성을 기울인다. 내외부 공간은 신발을 신고 다니므로 재료의 연계 및 구법을 통일시킨다. 지역의 오랜 기억을 가진 도로 측에서 보이는 외부공간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실내는 목적에 효과적인 구법을 구사하여 최대한 개방감을 만든다. 마당과 하늘 사이에 사람의 모습을 아름답게 만든다. 글 원오원아키텍츠  사진 ONE O ONE factory 백남준 기념관 https://njp.ggcf.kr/ 원오원아키텍츠 http://101architects.com 최욱 1963년생.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dottore in arch.)에서 건축설계 및 이론을 공부하였고 macdowell colony (u.s.a.), Valparaiso foundation (spain)에서 펠로우쉽을 받았다. 현재 ONE O ONE architects의 대표이다.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 2007년 선전-홍콩 비엔날레에 초대되었으며 대표작으로 학고재 갤러리, 두가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 등이 있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2013 DFAA(Design For Asia Awards)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으로 2014 김종성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OPENHOUSE 필운동 홍건익 가옥 필운동 홍건익 가옥(서울시 민속문화재 제33호)은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와 후원이 있는 구조이다. 자연 지형을 살려 건물을 앉혔으며, 일각문과 우물 같은 시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지 면적은 740.5㎡, 건물 면적은 154.6㎡,이다. 사랑채에 중문을 두어 바깥채와 안채를 구분하였고, 안채에서 후원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협문과 일각문을 두어 공간을 구분하였다. 후원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지며, 후원 끝에는 단차를 이용하여 빙고(氷庫)를 만들었다. 쪽마루와 대청에 설치한 유리문과 처마에 설치한 차양은 근대 시기 한옥의 특징이다. 화강석, 적벽돌, 시멘트, 철제 난간 같은 여러 가지 재료로 담장을 쌓거나 집을 보수한 흔적이 시기별로 달라 집의 역사와 특징을 보여준다. 홍건익 가옥은 서울에 남아 있는 한옥 중 보기 드문 규모의 집으로, 근대 시기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홍건익 가옥은 서울시에서 매입하고 전문가 자문을 거쳐 2015년 보수를 마친 뒤 2017년부터 일반에 개방되었다. 살림집에서 공공한옥으로 집의 기능이 바뀌며 대문채는 관리실, 행랑채는 화장실, 사랑채는 전시실과 사무실, 별채는 관람객 공간으로 쓰인다. 안채는 모임 장소로 대관하거나 강연과 음악회 같은 문화프로그램을 개최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1길 14-4 이용시간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공휴일 이용요금 무료 문의 02-735-1374 https://blog.naver.com/00hanok http://instagram.com/00hanok    글 사진 내셔널 트러스트
OPENHOUSE 누하동 이상범 가옥과 화실 동양화가 청전(靑田) 이상범이 살았던 집이자 화실인 이곳은 2005년 등록문화재(제17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가옥은 서울시가, 화실은 종로구가 소유해 관리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방문 가능하도록 개방하고 있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가옥은 1930년대 누하동을 비롯하여 경복궁 서쪽 지역에 형성되었던 도시형 한옥 건물로 이상범 화백이 43년간 거주한 곳이며 희소성에서도 그 가치가 인정된다. 또한 화실은 이상범 화백이 화실로 사용하던 곳으로 이상범 화백이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곳으로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있어 가옥과 함께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청전양식’이라는 자신만의 화법을 전개하던 산수화가인 이상범은 1942년부터 1972년 작고할 때까지 누하동 가옥에서 살았으며 배렴과 박노수 등이 배출되었고 그의 전성기 작품이 거의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주택은 ㄱ자 안채와 ㅡ자 행랑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근대 도시한옥이지만 드물게 부엌에 찬마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상의집, 최근 종로구립미술관으로 변신한 박노수 가옥과 함께 서촌의 근대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다. 글 서울시 사진 문화재청 장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31-7, 31-8 (누하동) 이용시간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30-17:30, 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전화 02-733-2038 +참고자료 문화재청: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79,01710000,11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860&contents_id=76052
OPENHOUSE 태양의 집, 김중업 태양의 집은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9,570㎡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 쇼핑센터다. 1979년 김중업이 설계해 1982년 준공했다.  이곳은 영등포구 신길동 대로변 모퉁이에 있다. 김중업은 이 건물을 부담 없이 들어가 구경할 생각이 드는 곳이 되길 바라며 설계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선 모습일지 모르나 상품이 보는 이의 감정을 윽박지르는 서울 거리에 이런 집이 기다려진 지 오래다”라고 건축가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이 건물에는 원형 모티브, 램프, 곡면의 사용 등 다양한 김중업의 건축 언어가 종합적으로 병치 되어 있다. 현재 ‘썬프라자’라는 이름으로 슈퍼마켓 등 상업 시설이 입점해 있다. 글 MMCA(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태동(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
OPENHOUSE 부산대학교 본관(현 인문관), 김중업 김중업은 1950년대에 세 개의 대학건물을 설계했는데, 부산대학교 본관은 그 중 첫 번째로 설계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경사가 심한 계곡 중턱에 위치한 지형적 특징을 반영했고, 캠퍼스의 전체 건물들을 통합하는 상징적 구심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계단이 조형적 요소로 강조되었는데 계단실 전면은 유리로 처리되어 주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1956년 설계를 시작으로 1957년 9월 착공하였으며 1959년 10월 준공되었다.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2,631㎡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 금정산의 지형에 따라 자 형태이며 1층 대부분을 필로티로 처리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게 했다. 규칙적인 모듈에 의한 평면 구성과 높은 층고, 전면 계단실의 넓은 유리를 통한 파노라마 경관, 후면부의 모자이크 창 구성 등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이 드러난다.  준공 당시 1층은 문리대, 2층은 총장실 및 대학본부와 법대, 3층은 상대 등으로 사용되었다. 1996년 내부 개보수 공사, 2004년 8월부터 2년간 원형복원 개념의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인문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012년 ‘부산시 근대 건조물’로 지정되었다.   글 MMCA(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익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OPENHOUSE 서강대학교 본관, 김중업 서강대학교 본관은 1958년 설계, 1960년 준공되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4,183.63㎡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이다. 노고산 능선에 평행하게 세워진 이 건물은 이전까지의 작품과 달리 엄격한 비례, 면 분할, 지형과의 조화하는 형태 구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관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격자 형태의 외부 차양막이 우측으로 보인다. 이는 오후가 되면 건물 내부로 깊숙이 파고드는 햇빛을 막기 위해 설치됐다. 정교하게 계산된 차양막의 각도 때문에 내부에선 시시각각 빛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다소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본관 업무동 건물의 핵심은 지붕이다. 하늘로 치켜선 형태의 얕은 지붕을 각 기둥에 걸치듯 피워 건물을 바라볼 때 시선이 흩어지지 않도록 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건축언어를 찾고자 애쓰던 시절의 작품이나, 모듈러 이론 등 그의 영향이 여전히 드러나 있다.  김중업은 “아직 르 코르뷔지에의 체취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의 영향에서 한시바삐 벗어나 혼자의 힘으로 걷고 싶어 하던 처절한 시절이었다. 구석구석에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언어가 두서없이 엿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고 스스로 고백했다. 시공 당시 있었던 굴뚝은 현재 철거되고 없으며, 계단실 유리면에 설치된 작품은 2014년 조광호 작가가 제작했다. 현재 이 건물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글 MMCA(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태동(국립현대미술관 제공) 
OPENHOUSE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 김중업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은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입구에 소재한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3,120㎡의 철골철근콘크리트조 건물이다. 1986년 설계해서 1988년 9월 12일 준공했으나, 김중업은 준공 4개월을 앞둔 5월 11일에 작고해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세계평화의 문은 올림픽정신을 구상적으로 표현하고 대회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세 차례의 설계 변경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의 전통적인 문(門) 개념을 도입,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의 조화를 이루게 한 설계안이 준공되었다.  높이 24.111m, 지붕길이 62.111m, 폭 37m의 거대한 규모로 몸체는 철근콘크리트에 화강석판을 붙여 만들었고, 지붕은 철골트러스구조에 동판 덮개를 씌워 제작했다. 지붕 아래쪽에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가 판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백금남에 의해 단청으로 입혀 있다. 세계평화의 문 앞쪽 마당에는 괴면 두상 조각을 얹은 열주가 길게 나열되어 있는데 이는 미술작가 이승택이 제작했다. 글 MMCA(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익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