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ABORATION 이강석작업실 이강석작업실 Leegangseok jakupsyl 이강석작업실은 건축적 물성과 재료에 관심을 두고 사진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진행해오고 있는 건축 사진/영상 스튜디오입니다. 오픈하우스서울의  생동감있는 공간을 담아 오면서 도시의 기록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SPECIAL 신체 치수와 비례로 구현한 여백의 미, 건축가 정재헌 ③ 주거뿐만 아니라 오륙도 가원 레스토랑과 같은 상업 공간이나 큰 규모의 프로젝트들도 하셨는데요. 규모가 큰 건물에서도 전이 공간이 많이 보입니다. 오륙도 가원 레스토랑의 경우는 아주 단순합니다. 단지 여러 명이 쓰는 조금 큰 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집에 진입해서 마당에 들어서면 고요합니다. 집은 마당으로 열려 있고 정면은 바다로 열려 있고, 그 너머의 산만한 풍경은 아래채가 가려줘요. 상업 공간이든 일반 집이든 인간이 좋아하는 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호시담 커피숍은 내향적으로 고요하게 만들었어요. 소쇄원이나 다른 집에서 물길 따라 올라가면 전망이 조금씩 보이던 경험이 이곳에서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보통 커피숍에서는 전망을 ‘짠’하고 보여주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의 오감을 더 경험하게 만드는 거예요. 오륙도 가원 레스토랑처럼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물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부는 걸 사람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 사람이란 다 똑같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험하고 싶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감정을 느끼게 만들면 좋은 공간이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저는 청계산 아래 텃밭에서 일하고 나서 산에 올라가 막걸리에 김밥 먹으면서 발 담그고 있는 걸 가장 좋아하거든요. 그저 비주얼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을 만들어주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호시담은 많은 사랑을 받는 장소입니다. 호시담이야말로 내향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시퀀스를 보여주는 장치가 많은 것 같아요.   호시담에는 커피숍과 펜션이 있습니다. 펜션의 경우 땅이 크지는 않았어요. 가족들과 단독주택에 살고 싶지만, 아파트에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한 가정이 외부 공간을 오롯이 느끼면서 아빠와 엄마, 아이들이 같이 오손도손 이야기할 수 있는 가정의 모습을 상상했어요. 단독주택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잖아요. 그 꿈을 하루라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호시담 커피숍에서 전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온 사람들에 대한 배려였어요. 전망만 보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분위기에서 상대와 친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상대에게 별로 배려를 안 하잖아요. 밥 먹으면서 서로 핸드폰 들고 이야기하는 게 저는 참 이해가 안 돼요. 이 장소에서는 상대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최근에 완성된 나무호텔은 도심형 호텔입니다. 숙박시설에서는 집과는 다른 경험을 기대하는데, 친숙하면서도 호텔 같지 않은 공간을 보여주고 있어요. 어떤 경험을 의도하셨는지, 숙박시설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고려하신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이에요. 호텔에서 항상 싫었던 게 있어요. 바닷가 호텔에 가면 방은 무척 좋은데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바다 전망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바다를 한 3분 보고 나면 할 게 없어요. 차라리 백사장에 나가는 게 좋죠. 호텔에서는 잠자는 것 외에 경험할 수 있는 다른 요소가 없는 셈이에요. 그 많은 시간 동안 갇혀 있는 듯했어요. 그래서 주택처럼 생활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문을 열어놓고 바깥에 나갈 수 있게 만들어서 집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경험을 만들고자 했어요. 다만 주택과 달리 어려웠던 것은 각 객실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이었어요. 호텔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묵기 때문에, 마당에서 서로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섬세한 배려가 필요했습니다. 바깥쪽에 나무를 심어서 시야가 마당까지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든가, 마당을 서로 엇갈리게 한다든가 여러 가지를 고민했어요. 그래서 모든 유닛이 달라요. 옥상에 있는 유닛과 중간 유닛, 저층부 유닛이 달라서 각 방이 지닌 얼굴도 다 다릅니다. 각 공간과 위치가 가지고 있는 매력, 사선 제한으로 만들어진 볼륨의 매력, 또한 전면과 후면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호텔에 집 10채는 집어넣은 것 같아요.     초기작인 이인디자인사옥도 있지만 최근 디파이사옥은 완전히 다른 접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업무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고려하신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디파이라는 회사는 주로 우리나라 대기업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이곳에서 시작해 사업을 늘려가고 있어요. 흥미로운 건 기업에서 먼저 제가 했던 작업을 찾아보고 설계를 의뢰했다는 점이에요.   지금도 저는 고층건물과 오피스 같은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데, 요즘 클라이언트는 달라진 것 같아요. 과거에는 오피스나 고층건물 작업을 해보았는지 아닌지 경험치를 중요시한 반면, 요즘에는 자체적으로 공간과 건축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자료 조사를 하고 제가 했던 강연을 포함한 모든 작업을 보고 오시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클라이언트도 자기 취향이 선명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디파이 회사도 본인들의 사업을 가장 잘 표현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의뢰를 하셨어요.   집을 보고 사옥 설계를 의뢰했다는 것이 흥미로워요. 네, 요즘 대부분 제가 설계한 집을 보고 오세요. 최근에 고층건물도 설계하게 되었는데, 디파이 사옥과 접근이 비슷해요. 저는 테헤란로 오피스에서 근무해본 적이 있어요. 답답해서 못 있겠더라고요. 요즘 오피스는 아주 작은 문을 살짝 열어놓고 일해야 하는 곳이죠. 그런데 디파이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보니 영혼이 자유롭더라고요.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습니다. 또 30대 이상 되는 사람이 없었어요. 거의 20대이거나 나이 든 사람도 30대 중반 정도밖에 없고, 외국인도 있습니다. 디자인 회사의 업무수행 방식을 보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피스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어디든 돌아다니고, 그들이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면 장소마다 색을 달리해서 각각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거죠.   또 그곳은 전용 주거 지역이어서 주택지가 많이 있다가 최근 하나씩 바뀌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용적률과 건폐율이 제한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지하 공간을 극대화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지하 공간 같지 않게 자연 채광이 되게 하고, 층고를 높이고, 풍경을 만들어줘야 했어요. 사람이 살 수 있으려면 빛이 잘 들고 환기가 잘 돼야 하거든요.  지하 공간의 매력은 매우 고요하다는 거예요. 단점은 시야가 막혀 있다는 거죠. 집중력이 높은 공간이니 환기를 잘한다면 지하 공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살릴 수 있습니다. 1층의 매력은 접근성이 좋고 땅에 면해 있다는 점입니다. 2층과 3층, 그리고 옥상이 가지고 있는 매력도 각기 달라요. 옥상은 하늘로 열려 있어서 파티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작업하다가 이곳에 와서 쉴 수도 있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창의적인 회사의 경우지만 일반적인 사무공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보시는지요? 크레이티브 하다는 것은 자유로운 것입니다. 시간을 아무리 쏟는다고 해서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집중도가 중요해요. 이 시대의 업무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작업을 손으로 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을 투입해야 했어요. 지금은 컴퓨터가 있잖아요.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생각의 차이를 순도 있게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신나서 집중할 수 있어야 해요. 요즘 업무시설에서는 그게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바뀔 것 같고요. 또 하나 예상되는 변화는 업무시설을 다 모아놓을 것 같지 않다는 거예요. 코로나 19가 우리 사회를 확 앞당겼습니다. 저 역시 오늘도 교수회의를 제 사무실에서 온라인으로 했어요. 이동도 없고 공간적인 제한도 없어서 너무 편한 거예요. 대기업도 앞으로 한군데에 모아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떠나 작동할 거예요. 공간의 장소성을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본인이 원하는 좋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것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똑같다는 거예요. 원할 때 창문을 열 수 있고, 바람 쐬러 바깥에 나갈 수 있고, 외기를 면할 수 있고, 이동하면서 풍경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죠. 그래서 오피스 역시 집처럼 느낄 수 있도록 휴먼 스케일로 만드는 시도를 했습니다. ‘내가 사무실을 쓴다면 어떨지’를 항상 생각해요. 호텔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호텔에서 느꼈던 것과 아쉬웠던 것들을 반영해서 표현하려고 해요.   적극적인 외부 공간의 도입은 주변 환경에 대한 보호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디파이사옥의 공간은 어떻게 구성하셨나요? 대지 주변에 오피스텔이 촘촘히 붙어 있어서 서로가 훤히 보이는 아주 부담되는 환경이에요. 그래서 비어 있는 공간과 두꺼운 벽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주변 건물이 밀도 높게 겹겹이 붙어 있을 때 완충 공간을 어떻게 편안하게 만들까 하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어요. 디파이사옥은 거꾸로 외곽에 비어 있는 상자를 만들고 그 외곽선을 최대한 대지 경계에 맞춰서 안에 프로그램을 넣었습니다. 비어 있는 공간이 거꾸로 내부에 침투해요. 빈 공간을 만들고 층마다 각각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역전된 경우라고 보면 되죠.   결과적으로 외부 공간에 대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죠? 그렇죠. 외부 공간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실제로 보면 테라스 하우스처럼 되어 있어요. 각층에서 테라스로 나갈 수 있도록 한 거죠. 외부와의 접촉을 어떻게 늘리느냐가 중요해요. 도시의 밀도가 있고 외관도 신경 써야 해서 컨텍스트에 맞춰서 껍질을 만들어준 거예요. 두 개의 껍질이 있고 안에 콘텐츠가 들어가 있는데 대부분은 비어 있죠.   절대적으로 수용해야 할 인원이 있었나요? 수용해야 할 면적이나 인원이 있었기 때문에 지하를 더 작업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말씀드렸듯이 지하에 들어갔을 때 채광이 잘 되면 고요하게 느껴집니다. 작업할 때 집중도가 올라가죠. 환기와 채광 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외곽 양쪽 끝단으로 빛이 들어가게 했어요. 그리고 식물을 심어서 빛이 비치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층고는 4.5 m 정도로 높게 만들어서 지하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했어요.   디바인-1주택은 기존 집보다 규모가 크지만, 역시 내외부 공간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고려해 만든 진입부가 인상적이에요.    기본적으로 판교는 땅에 맞춰서 평평하게 택지 개발 작업을 진행했고, 디바인은 타운하우스처럼 조성되어 있어요. 원래 집합적으로 계획되었다가 시행사가 구입해 필지를 나눠 땅을 팔았어요. 도시 계획상의 필지를 형질 변경해 나누면서 아쉬운 점이 있죠. 완만한 사면의 땅에 인위적으로 4m의 장벽을 만든 거예요. 마치 성벽처럼 느껴졌어요. 디바인 전체 단지는 70세대이고 단지 입구는 딱 두 군데입니다. 우연히 디바인에서 세 필지를 설계하게 되었는데, 디바인의 입구 두 개 중에 서쪽에 있는 곳이 처음에 설계한 것입니다. 몇 달 후, 건너편 필지에 두 번째 집을 설계하게 되었어요. 마치 성문의 양쪽을 지지하는 것처럼 되었죠. 어려웠던 것은 300m의 거대한 장벽 위에 건물을 올려야 하는 것이었어요. 또 다른 어려움은 지면과 1층의 높이 차이가 4m나 나는 것이었습니다. 땅을 밟고 있는 집 같지 않았어요. 마당의 레벨이 위에 있다 보니까 기단 위에 있는 집이 되었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도로 레벨에서 들어가서 어떻게 집까지 편안하게 도달할 것인가가 최고의 숙제였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걸어 다니지 않고 차로 집에 들어간다고 가정한 듯해요. 동네를 생각했을 때는 집 바깥에 나오기도 하면서 마을의 얼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집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동네의 얼개를 만들어주는 것도 큰 숙제였는데 규정된 전면은 건드릴 수 없었어요. 땅을 뒤편으로 과감히 후퇴시켜 도로 레벨에서 접근하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땅을 내주고 나무를 심어서 강한 밀도를 완충시켰어요. 이웃을 잘 만들고 주변 환경이 좋아야 당신이 가장 혜택을 받는다고 의뢰인들을 설득했죠.   디바인-1주택은 단순한 매스 구성이면서 수평적인 선이 인상적입니다.   이 집이 다른 집들에 비해 한 층이 낮아요. 면적이 충분했어요. 주택은 수직으로 만들면 계단을 통해 이동해야 해서 불편해요. 편안함을 주는 것이 주택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앞서 배려에 대해 말씀드렸듯이 집에 수직 동선이 많으면 잘 사용하지 않게 돼요. 계단 위에 있는 곳은 잘 가지 않게 되죠. 그래서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극대화했어요. 디바인-1의 건너편 집을 비슷한 시기에 설계하고 준공했는데, 두 집 모두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서 이동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위 공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위층에는 침실 영역을 주로 놓고 1층에는 거실과 식당 같은 낮의 공간을 놓았습니다. 낮에는 1층에서 편하게 수평으로 이동하고 밤에 주무실 때만 올라가게 했어요. 수평적으로 거실, 식당과 외부 공간, 진입로 그리고 마당이 하나로 통합되도록 풀었습니다. 핵심 두 가지는 첫째, 집이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것이었고 둘째, 고인돌처럼 큰 기단이 위에 놓여 있고 그 밑에 자유롭게 움직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바라보는 마당과 쓰는 마당으로 구분하셨던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마당에 진입하는 방식에 따라 닫힌 마당과 열린 마당을 달라진다고 하셨는데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 층을 올라가야 집의 마당이 있어서 편안하게 마당까지 올라가게 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이곳의 집들은 주차장을 통해서 들어가는 걸 전제로 만든 것 같아요. 사람이 다니게 해놓은 것 같지는 않았죠. 그래서 차로 들어가서 접근하는 과정이지만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상징적인 접근로를 만들고, 자연 속을 걷듯 편안하게 집의 풍경을 보면서 올라가도록 만들어주고자 했어요.   주차장에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마당이 나오게 했어요. 내가 처음 맞이하는 공간이 어디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저는 집이 나를 환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집에 빛이 들어오고 자연이 보여야 합니다. 잘못 설계하면 어두운 곳에서 집에 들어가요. 물론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쓰지 않고 기분 좋게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그래서 진입 레벨인 지하층에 마당을 만들어서, 마당을 끼고 돌아서 집에 올라가게 했습니다. 올라간 뒤에는 전면에 막힘이 없어서 프라이버시가 확보되죠. 이 집에서 시도했던 것은 물소리, 바람 소리 등 자연이 바로 집 옆에 있게 한 것이에요. 요즘 주택에서 쓰고 있는 요소인데요. 마감 재료를 각각 다르게 해서 사람이 움직이면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치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 집의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이어서 꼬마를 생각하면서 물놀이 하는 것, 비 안 맞고 노는 것, 물소리와 바람 소리를 듣는 것 등을 많이 생각하면서 지었어요.   특별히 실내 공간의 구성에서 고려하신 점이 있나요? 말씀드렸지만 수평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예를 들면 1층은 음악실을 제외하고 다 열려서 통합되어 있어요. 이 집에서 근사한 부분이 바로 현관이에요. 여유가 느껴지도록 했어요. 현관은 처음 대면했을 때 사람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에 대한 배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외부 공간과도 연결되고, 진입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도 많습니다. 집에 들어가서도 상황에 따라 집을 다양하게 면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현관에는 항상 여유롭게 앉을 수 있는 벤치를 놔둡니다. 서양에서는 신발을 신고 다니니까 불편하지 않지만 우리는 항상 신발을 갈아 신고, 무언가를 해야 하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옆에 놔야 해서 이 부분을 많이 고려했어요. 집에 진입하면서 빛을 어떻게 쓸지, 어떻게 프라이버시를 이용할지, 어느 쪽을 열어 통합할 것인지 고민해요.   새정이마을주택에서도 이곳 디바인-1주택에서도 욕실 옆에 작은 외부 공간을 두고 있는데요. 저는 집에서 화장실 공간을 가장 많이 신경 써요. 물론 다른 곳도 중요하지만 화장실 공간은 디테일과 시공에 더 신경을 많이 써요. 왜냐하면, 사람이 옷을 벗고 이 공간을 쓴다는 것은 자기 피부로 주변 환경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마감과 조명, 바닥의 미끌림, 쾌적성, 빛이 어떻게 들고 환기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신경 씁니다. 환기가 잘 되면서 바로 바깥까지 나갈 수 있게 하고 아무리 작더라도 꼭 식물을 둬서 더 쾌적하게 만들었어요. 디파인-1주택에도 안방 화장실 옆에 작은 정원이 하나 있습니다. 작은 공간 하나로 눈•비가 오는 계절을 느끼고 환기가 자연스럽게 되면서 시야는 안팎으로 향하지만 프라이버시는 보장되죠.   내외부 공간을 함께 엮어내는 방식이 집의 공간을 풍요롭게 하는군요. 앞서 말했듯 지금 설계하는 집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을 보면 우리나라 집의 변천과 같아요. 첫째, 방의 개수가 줄었다는 것이고 둘째, 식당•주방이 굉장히 중요해져서 집의 중심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또 실내 면적 확보에 대한 욕심이 줄어들고 집에 대한 퀄리티와 다양성이 중요해졌어요. 자연스럽게 외부의 가장 좋은 공간을 비워놓고 그 공간이 실내 공간과 짝을 이루어서 같이 쓰일 수 있게 되었죠. 지난 5, 6년 전부터 시도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규정되지 않고 열려 있는 공간이 풍요로움을 주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림으로 치면 여백과 같아서 그것이 집의 모든 성격을 규정하고 많은 역할을 해요. 요즘 ‘집의 품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요. 넓은 집이 품격을 만드는 건 아니에요. 작은 집이지만 현관을 여유롭게 만들거나, 집에 문 하나 열어 바로 들어가지 않고 아주 작은 마당이라도 거닐면서 외부 공간을 길게 늘어뜨려 경험하게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공간을 아껴 써야 할 때와 조금 넉넉하게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판교에 있는 친구네 집은 규모가 작지만 화장실이나 서번트 공간은 비슷합니다. 현관이나 화장실, 창고처럼 꼭 있어야 하는 부속 공간을 넉넉하게 했을 때 격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재료에도 그런 격이 있고요.   재료 역시 점점 더 풍부하게 사용되고 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재료를 사용하고자 하는지요. 재료를 쓸 때 중요한 부분이 있어요. 우리는 집을 너무 빨리 짓는 것 같습니다. 빨리 결과를 바라고요. 새마을 운동 이후 산업사회가 되면서 무엇이든 빨리 그리고 싸게, 크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이것을 덕목으로 생각하다 보니까 정성이 들어가는 게 하나도 없어요. 뭐든지 세월이 지난 것은 버리고 정을 안 주는 거죠.  또 다른 특징은 빨리 망가지는 거예요. 지금부터 하나하나 정성 들여서 천천히 지으면 파괴되는 것도 천천히 파괴되어 더 좋지 않을까요? 사실 세월이 지나면서 더 좋아지는 것인데 우리가 너무 급하게 결과를 보기 위해서 달려온 것 같아요. 그러려면 산업재를 쓸 수밖에 없잖아요. 산업재는 빠르게, 값싸게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계속 나빠져 가요. 두물머리주택에서도 말했지만 백색 건축은 주기적으로 칠을 합니다. 칠을 하는 건물들은 칠한 상태가 항상 최고의 상태예요. 세월이 지나서 다시 칠을 하면 시간이 축적되지 않아요. 낡으면 완전히 새것으로 만드는 것이 안타깝더라고요. 또 하나는 초기에는 백색을 썼지만, 우리나라 환경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르코르뷔지에가 백색을 쓰게 된 것도 지중해 기후의 스페인과 그리스를 여행하며 백색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뒤입니다. 그곳과 우리는 날씨의 질이 달랐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황사가 심하고 눈, 비가 강하게 오고 하늘이 투명하지 않아서 백색을 사용할 때 과연 우리 환경에서 버텨낼까 싶어요.     파주 주택의 경우 규모가 작지만 공간의 다양성이나 풍부함은 더 극대화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외부 공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의뢰인분들은 연세가 있으셨고 아드님과 같이 사셨습니다. 의뢰인이 저와 나이가 비슷했는데 ‘지금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이가 더 들었을 때를 위해 집을 짓는 것’이라는 말씀을 했어요. 그래서 라이프 사이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면서 풀어 갔습니다. 또, 집은 작지만 두 분이 연세 들었을 때 어떻게 살지, 외부 공간을 어떻게 이용할지, 지금은 게스트하우스지만 다음에 어떤 것으로 이용할지, 아들은 어떻게 공간을 쓸지 고민하다 보니, 하나의 건물이 세 채의 집처럼 자연스럽게 나누어졌어요. 채가 나뉘고 각각의 외부 공간이 생기면 공간이 분할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편안해집니다. 예를 들어,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지금처럼 대청마루가 있었을 때와 대청마루 없이 바로 붙여 놨을 때는 아주 다릅니다. 완충 공간이 있으니까요. 대청마루에서 놀 수도 있지만, 완충도 해주기 때문에 다목적인 공간이 됩니다.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10가지 이유에서 외부 공간을 만들죠. 재료를 쓰면서도 하나의 벽돌을 가지고 다양한 텍스처를 만들어냈어요. 빛이 어떻게 들여서 거주자가 어떻게 느꼈으면 좋겠는지 고민하죠. 오른쪽은 맨질맨질한 목재를 쓰고 왼쪽은 거친 재료를 쓰면 자연스럽게 우회전을 하지 않을까요? 하나하나의 심리적인 요소와 한 발 한 발 디딜 때의 감긱을 신경 썼습니다. 집에 어떻게 빛이 들어오는가, 뒷산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것도 있어요. 집이 외부에 바로 면하면 부담스러우니까 스크린 같은 것을 만들어 뒷산의 큰 규모를 줄여 집에서 만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집을 여러 채를 짓고 건축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작은 것들이 모여서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바로 어제 했던 프로젝트가 저의 스승이죠. 제가 지었던 집을 자주 방문해서 무엇이 불편한지, 이 집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마치 아이를 지켜보듯 업데이트합니다. 의뢰인들과 만나서 그 집이 뭐가 좋고 나쁜지 얘기를 들으면 저도 느끼면서 경험합니다. 건축가 자신이 가장 잘 알잖아요. 두물머리주택에서 판교 주택까지 오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큰 변화는 없지만 눈에 안 보이는 작은 차이가 진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사옥이나 호텔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집이라고 할 때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나의 역할만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보통 의뢰인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출발이지만,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이 방식이 언제까지 버텨낼지 생각합니다. 집을 짓고 시공 감리를 할 때 시공자들에게 ‘이 집이 100년 갈까요?’라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높아져서 어느 정도 먹고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의식주의 첫 번째인 옷의 경우, 이제 아주 세련되게 잘 입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느껴요. 두 번째 음식 역시, 요즘 쉐프들이 음식을 정말 잘 만듭니다. 세 번째 해결해야 할 것이 집입니다. 집이 가장 느리게 바뀌겠죠.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10년 쓰다가 버리겠어요. 물건도 아닌 집인데 어떻게 소홀히 대할까요? 하나라도 제대로 지어서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끔 학생들에게 10년 이상 가지고 있는 물건이 있냐고 묻는데 잘 없어요. 우리는 계속 새것, 새로운 스타일을 소비합니다. 제가 보수적이라 그런지, 물건 하나를 가지더라도 오랜 친구처럼 같이 지내온 물건들이 저에게는 아주 소중해요. 그렇다면 집은 그보다 더 가치 있지 않을까요?   새정이마을주택 인터뷰 때 집에 대한 정의로 '기억의 저장고’라고 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집도 함께 나이 먹어가면서 그 안에 기억이 저장되고 살아온 과정이 축적되더라고요. 그게 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파트에서 유목민처럼 사는 것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된 것은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기억이 축적될 때, 문화가 축적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네와 자기 자신, 자신의 공간을 사랑해야 하죠. 항상 학생들에게 자기 주변 정리를 먼저 하라고 말해요. 사무실에서도 직원들에게 디자인의 시작은 자기 주변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으로의 젊은 세대는 아마 그런 태도와 취향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젊은 의뢰인들이 대부분인데 본인이 원하는 바가 아주 명료합니다.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제가 알아서 의뢰인의 집을 지었지만, 요즘은 의뢰인들에게 집에 대한 글을 6장씩 써옵니다. 건축에 관한 생각이 명료하고 지식도 높더라고요. 책도 많이 읽어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래 세대에는 좋은 건축물이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해요. OH   진행 임진영 사진 이강석
OPENHOUSE 현장 프로그램 ㅣ 구립독산도서관 리모델링, 임영환, 김선현 2021년 10월 30일 3:00PM
OPENSTUDIO LIVE ㅣ에이라운드건축사사무소, 박창현 2021년 11월 6일 7:00PM
OPENHOUSE <당선작들, 안녕하십니까>, 오픈하우스서울 × 정림건축문화재단  연계 포럼 <당선작들, 안녕하십니까> 오픈하우스서울 × 정림건축문화재단  온라인 라이브 오픈하우스와 정림건축문화재단은 서울에 새롭게 등장한 공공건축 오픈하우스뿐만 아니라, 공공건축안이 선정되는 공모전 이후 실제 지어질 때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번 연계 포럼은 공적 시스템 내에서 좋은 건축이 완성되기가 어려운 이유, 그리고 그 제한을 뚫고 고군분투하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공공건축이 도시에 어떤 역할을 하고, 도시의 공적 역할을 어떻게 높이고 있는지, 건축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참가신청: 정림건축문화재단 포럼 웹사이트  http://forumnforum.com 11.04(목) 서울공예박물관  | 천장환(이머시스)/송하엽(중앙대) + 고미경(서울공예박물관 학예사) 11.11(목) 서울서진학교 | 유종수/김빈(코어건축) + 심윤서(서울서진학교 교감) 11.18(목) 종암박스파크 & 한남뜨락 | 박정환/송상헌(심플렉스) & 천장환(이머시스) 11.23(화) 양천공원책쉼터 | 김정임(서로아키텍츠) + 온수진(양천구청 공원녹지과 과장)
FILM 집의 공간 2, 오픈하우스서울 x 기린그림 지난해 <집의 공간>에 이어 올해는 두 채의 집을 소개합니다. <집의 공간 2>에서는 지붕과 테라스를 유려한 선으로 이으면서 동시에 패시브 하우스를 시도해 미학과 에너지 절감을 동시에 실현하고자 한 선유재와 풍경을 적극적으로 규정하면서 집의 아늑한 공간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하는 고안된 장식들을 기린그림의 건축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써드플레이스 3과 서교 근생과 같은 저층형 공동주거의 모색을 현장 프로그램으로 만나봅니다.  오픈하우스서울은 해마다 집의 공간 시리즈를 이어가, 우리의 삶이 담긴 공간과 도시와 건축의 접점을 모색해나가고자 합니다. 온라인 프로그램  영상    선유재_이정훈  영상    고안된 장식들_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현장 프로그램 (10월 22일 오후 2시 예약 오픈)  10월 30일 오후 4시          서교 근생(Seogyo Geunsaeng)_서재원, 이의행 11월 9일 오후 1시            써드플레이스 홍은2_박창현         
SPECIAL OPENHOUSE Seoul BAG + BADGE SET 2021년 10월 21일 5:29AM
OPENHOUSE 영상 ㅣ 수졸당 (守拙堂), 승효상 1986년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수근 선생께서 남기신 말씀으로 나는 공간설계사무소를 3년간 이끈 적이 있다. 선생이 부재에도 선생의 건축을 계속할 수 있다며 분투하였지만 늘 허무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 선생이 남기신 울타리에서 나오고 만 때가 1989년 말이었다. 15년간 선생의 문하에서 익힌 건축의 방법은 너무도 내게 익숙한 것이었어도 그걸 확인해줄 이가 없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내 건축을 찾겠다고 독립한 나는 내 건축을 전혀 몰랐고 심지어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15년은 김수근건축에 철저히 동화되어 내 신체가 되기까지 한 족쇄였지 않았을까?  내 건축을 찾기까지 아득한 방황과 결렬한 자아 부정 등의 과정을 통해 신음하듯 뱉은 게 ‘빈자의 미학’이라는 용어였다. 선언이라고 해도 된다. 그때까지 내 모든 지난날들을 용광로에 넣어 녹여 겨우 추출한 단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업한 게 수졸당이다.   그 이후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물론 대단히 많은 작업을 그사이에 마쳤으며 여전히 건축의 현장에 머물러 있는 나에게 그간의 세월은 실패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과도하게 말하면 내가 작업한 건축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여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작업이 이 수졸당이다. 내가 지금 얼마만큼 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하며, 그럴 정도로 수졸당은 내 건축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1993년에 완공되어 28년간 삶의 때를 묻힌 수졸당이 처음으로 대청소를 하여 원형을 다시 찾았다. 그 사이에 지가가 어마어마하게 올라 주변은 죄다 상업용의 시설로 변했지만, 이 집의 주인인 유홍준 교수는 그 세찬 상업주의에 저항하였고 이제는 이른바 ‘현대의 유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믿기로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을 이 땅 위에 서서 우리가 살았던 기억을 이으며 전하게 된다. 수졸당은 그래서 이미 역사며 문화의 한 부분일 거다.   아랫글은 수졸당을 지은 직후인 1993년에 쓴 것이다.    오랜 도시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수없이 많은 건축물이 이 땅을 빼곡히 메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건축이 여전히 세계의 건축과 괴리를 느끼게 하고 있음과 한국문화의 중심에서도 멀리 있음을 고백해야 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다른 몇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 구조를 지배한 잘못된 정치행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더불어 균형 잡히지 못한 부의 축적에만 몰두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가치가 왜곡된 그런 사회에서 빚어지는 건축의 모습은, 더 높이 만, 더 크게만, 더욱 위엄 있게 만 보이기 위한 것들에 더욱 큰 관심을 두게 하였고, 그 결과 그 속에서의 삶의 의미는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갑자기 축적된 부가 헛된 장식과 구호에 쏟아 부어진 결과, 거리를 메운 건축은 찬란하되 껍데기뿐이었고 화려하되 졸부의 헛된 욕망을 나타내는데 만 골몰하였음에 우리의 삶은 자꾸만 일그러지고 또한 박제될 그러한 위험에 처해 있음도 아울러 직시해야 한다.  우리네 조선의 선비들이 빚은 도시와 건축은 어떻게 저토록 높은 격조와 품위를 가졌었나. 그것의 바탕은, 물질보다는 정신에, 욕정보다는 이성에 더욱 큰 가치를 둔 청빈의 정신이었을 터이며, 그의 위에선 선비정신은 조선 500년을 지탱케 하며 우리의 뿌리가 되어 있음을 다시 기억해 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자기의 땅보다는 남의 것을 더 채워주려 하고, 더 작은 땅을 점유하려 하며 그것도 남과 같이 쓰기를 원하는 그런 염치와 절제의 건축을, 사회와 고립된 높은 벽체로 싸인 그림 같은 집이 아니라 이웃과 연결된 보다 낮은 그런 집을, 육신이 편안하기보다는 정신이 맑기를 원하며 육체를 왜소화시키는 기능적인 집보다는 오히려 반 기능적이어서 삶 자체가 진솔해지는 그런 공간을, 우리로 하여금 사유케 하고 스스로를 반추시키는 배경이 되는 그런 지적 벽면을, 이제 우리의 도시에 다시 세워야 함을 믿는다. 이 아름다운 산하와 반만년 역사를 이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 저런 못난 건축 속에서 그 질을 보장받을 수 없다.  세기말을 앞둔 지금, 그러한 일그러진 편린과 대립해야 하는 우리의 정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것은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까닭이 된다. 보잘것없는 집'이라는 뜻의 이 집은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를 위한 집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유 교수는 한국 미술사에 남다른 식견을 가진 미술평론가이며, 또 그는 민중의 삶에 애착을 가진 지성이다. 그는 나에게 설계를 의뢰하기까지 여러 번 망설였다고 한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대한 불신 등이 그러한 망설임의 대부분이었는데 이를테면 비싼 것, 편하지 않은 것 등이 그것이다. 유 교수는 이러한 것이 선입 관념일 수 있음을 알고 나에게 이런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설계를 의뢰하였으며 동시에 나의 건축적 의지에 결코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고, 이 약속은 끝까지 지켜졌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가치가 우선된 토지, 주거 정책으로 인하여 크게 잘못된 주택관을 가지게 되었는데 주택을 사용에 대한 관념보다 소유개념을 더욱 중시한다는 것으로 그 결과 집 속의 공간이나 그 속에서의 삶보다는 집을 구성하는 벽체와 지붕의 모양 등에 더욱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얻어진 주거형식이라는 것이 주어진 필지에 높은 담을 쌓고 자기를 보호받기 위해 그 담 위에 철조망을 또 두르고 그 속에 아파트처럼 기능적인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 부분은 `저 푸른 초원'을 즐기기 위해 잔디 깔고 나무 심는 그러한 것인데, 이러한 집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이웃이 있을 턱이 없고, 가족의 아이덴티티가 있을 수 없으며, 더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 또한 오히려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와지붕 시대 이후의 참다운 주거문화를 실현해 본 적이 없으며 오로지 주택이 가족 신분에 대한 상징으로서 여겨져 온 결과 껍데기만 있는 졸부의 주거문화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집 장사와 개발업자들에게 상당 부분 있지만, 그렇다 하여 건축가들의 책임 또한 면하기 어렵다.  내가 이 집을 설계하면서 가진 의문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시 도시주택의 전형을 만들 수 없을 것인가. 주택은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나. 주택에서 삶의 형태와 공간의 형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주택은 기능적이어야 하나. 이 시대는 어떤 주거형식을 요구하는가. 이 집이 완성되면서 이러한 의문문이 얼마만큼 그 해답을 구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취한 몇몇은 요즘 나의 건축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는 빈자의 미학에 대한 구체적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였고, 그 성취는 대부분 유 교수가 전적으로 건축가를 신뢰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며 그와 설계와 시공 기간 중 내내 나눈 여러 이야기가 오래 기억될 것이다. 1993.  글 승효상  사진 김잔듸
OPENHOUSE 현장 프로그램 ㅣ 서울여담재, 천장환 2021년 11월 5일 3:00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