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HOUSE
세계장신구박물관, 김승회
서울의 북촌은 조선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르는 시간의 깊이가 빚어내는 장소이다. 시간이 박혀있는 도시에 설계를 한다는 일이 결국 시간과 관계를 맺는 일이라면 북촌의 세계장신구박물관 설계 역시 서로 다른 시간을 하나의 장소 안에서 조작하는 일이다. 북촌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2층 양옥을 고쳐 장신구 박물관으로 만드는 일은 북촌이라는 오래된 풍경과 장신구라는 아름다운 전시물이 건축물을 매개로 만나게 하는 즐거운 작업이었다.
장신구박물관이 의식해야 하는 시간의 성좌는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북촌이 이루는 켜이고 또 하나는 세계 곳곳에서 모인 장신구들이 발산하는 켜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 등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지닌 장신구들이 마치 기적처럼 한 장소에 모여 있으며 새로운 시간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기존 주택을 리노베이션하여 새로운 박물관으로 만들면서 각각의 장신구들이 그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전시되는 것이 과제였는데, 그것은 각각의 공간이 연속되어 있으면서도 개별성을 지녀야 함을 의미했다. 다행히 기존 주택이 지닌 공간의 구조는 장신구를 전시하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각각의 분절된 공간마다 독립된 주제를 지닌 장신구가 전시되어야 했으므로 각각의 공간은 고유한 특징을 지니도록 배려했다. 각각의 전시공간은 ‘정원’, ‘숲’, ‘엘도라도’, ‘십자가’ 등의 주제를 지니면서 차이를 만들어내었다. 공간의 크기와 재료, 빛과 촉감 등 여러 방식을 통해 전시 관람 시간을 분절하고 또 이어주었다. 그 결과 작은 공간이지만 관람객은 많은 공간의 주름과 시간의 켜와 경험의 단층을 누리게 되었다.
북촌의 시간과 공간이 지닌 중요한 특징이 각각이 지니고 있는 스케일이라면 북촌에 놓인 집 역시도 그 작은 스케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존의 주택에 새로운 외피를 붙여나가면서 그 볼륨이 지니는 분절들에 고유한 재료를 부여하면서 매스와 재료의 스케일을 획득했다. 그리하여 동판과 적삼목, 유리와 철이 서로 만나면서 각각의 재료가 지는 시간과 공간을 증거하며 ‘하찮은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의미있는 북촌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세계장신구박물관은 성좌와 같은 도시 공간 안에 놓여 있으면서, 다시 그 집속으로 장신구가 이루어내는 새로운 성좌를 품고 있는, 작은 시간이자 작은 공간이다.
글 김승회 사진 강일민
OPENHOUSE
서울대 IBK커뮤니케이션센터, 사범교육협력센터, 버들골 풍산마당, 보이드 아키텍트
IBK커뮤니케이션센터
IBK커뮤니케이션센터는 캠퍼스학생들의 원할한 소통을 위한 미디어컨텐츠를 제작하고 서로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한 허브시설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에따라 시설이 위치할 사이트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1년에 걸쳐 사이트를 찾는 캠퍼스위원회가 진행되었고 결국 학생들의 동아리시설과 각종 공연을 위한 퍼포먼스 연습실 등을 갖추고 있는 기존의 두레문예관과 인접한 경사지로 결정이 되었다. 이곳은 캠퍼스 초입에 위치하여 관악산 전망을 갖춘 비교적 훼손되지 않은 느슨한 캠퍼스의 여백으로서, 비워있음 그 자체로 충분히 역할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여러 갈래의 정형화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가로들이 입체적으로 교차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메인도로에서 너무 가까운 곳이어서 건물이 들어설 경우 캠퍼스초입의 느슨함을 침범하는 결과를 초래할까 우려되기도 했다. 건물은 대운동장 스탠드의 높은 둔덕을 기대고 인접건물의 열을 맞춰 관악산의 열린 풍경을 조우하는 포즈를 취하고, 기존의 입체적 가로를 그대로 건물 내외부로 끌어들여와 여러형태의 소통공간이 교차하는 콘크리트 플랫폼을 건물의 형태적 코드로 드러냈다. 이에 건물내부의 이벤트마당에서는 여러 활동들을 담는 입체적 플랫폼들이 집중되고 교차되도록 하여 적극적인 소통의 마당이 펼쳐지도록 유도했다. 외관은 건물을 둘러싼 자연풍광에 순응하기 위해 적삼목루버를 설치하고 서향일사를 제어하도록 루버방향을 다양하게 하여 따뜻한 미디어 서킷(media circuit)의 이미지로 읽히길 희망했다. 또한 내부공간에서도 적삼목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자연풍광이 그대로 공간인테리어 분위기를 장악하도록 했다.
비워도 좋을 땅에 채움이, 의미없이 교차되던 학생들의 흐름을 잡아주고 부딪히게 만들어, 앞으로 긍정적인 소통의 보금자리로 작동하길 희망해본다.
사범교육협력센터
사범대학은 가운데 중정을 끼고있는 ‘ㄷ’자 형태의 저층클러스터에 조그만 강의동이 붙어있는 초기 70년대의 캠퍼스구성개념이 잘 보존된 곳이었다. 관악캠퍼스의 끝자락에 위치해 한적하고 평안했던 사범대학에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과밀’의 바람이 불게 됐다. 사범교육협력센터는 한켠의 강의동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기존건물대비 6배의 연면적을 요구하고 있어 사범대학 전체클러스터의 새로운 얼굴로서의 위상을 필요로 하였다. 또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캠퍼스중심가로와 녹색의 여백을 사이에 두고 폐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기존의 클러스터방식에서 벗어나 캠퍼스중심가로와의 적극적인 조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우선 기존 여백의 자리에 2개층 높이로 열린 옥외 플로팅플라자를 마련하여 사라진 여백의 풍경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또한 저층부의 북카페, 인터넷플라자 등으로 이루어진 퍼브릭공간을 외부와 소통시키고 주변의 녹색풍경을 적극적으로 담기위해 투명한 유리매스로 구성하고 여기에 중심가로로부터 연계된 플로팅플라자가 자연스럽게 관입하여 내부중정까지 이어지는 동선의 흐름을 유도하였다. 하부조직의 얼개와 분리되어 상부에 떠있는 금속재질의 매스는 캠퍼스 전체를 조망하고 원경의 관악산을 적극적으로 담는 모습으로 휘어져 있다.
재편가능하도록 소프트한 하부 공간구조는 결국 과밀한 도시 구조 속에서도 건물이 존속하는 동안 변화하는 주변과 호흡하며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유기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작은 실험이 되었다. 다만 생경한 모습으로 떠있는 공중의 매스는 과거의 균질성에 도전하는 모습이 아니라 캠퍼스의 긍정적인 활력소로서 지속적으로 작동하길 바래본다.
버들골 풍산마당
서울대학교 캠퍼스의 중심에서 각 단과대학 사이로 이어진 가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관악산의 산세가 한 숨 쉬어가듯 만들어놓은 완만한 지형의 들판이 나타난다.
캠퍼스 중심으로부터의 동선에서는 가장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동시에 기숙사와 후문을 통한 접근에서는 또 다른 출발점으로서, 아래에 펼쳐진 캠퍼스와 이어지는 버들골 영역은 캠퍼스와 관악산 사이의 경계부에 여백으로 남겨진 채, 한 켠에 자리 잡은 기존의 노천 강당과 함께 학내 구성원이나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집단적 또는 개별적인 기억의 장소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도림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저류조가 들어서게 되며 기존의 노천극장이 철거되었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야외공연장에 대한 기획이 시작되었다.
초기에 일반적인 건축물로 검토하기 시작된 신축계획은, 이 후 건축가와 조경전문가가 개입된 기본계획연구를 거치며 버들골 전체 영역을 대상으로 한 고민으로 확장되었다.
기존 버들골 영역과의 조화를 고려해 건축물과 객석의 규모는 다른 비슷한 성격의 공연장에 비해 소규모로 설정되었으며, 캠퍼스 가로와 이어지며 레벨이 가장 낮은, 버들골의 한쪽 가장자리로 그 위치가 결정되어 넓게 펼쳐진 기존 공간구조를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원칙은 관람영역의 계획에서도 적용되어, 주변 지형의 완만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스탠드로 이어지도록 지형을 조정함으로써 인공적인 스탠드 부분만이 아닌 버들골 전체로 그 영역으로 확장 되도록 하였고, 무대영역 또한 재조정된 지형의 흐름이 아래에서부터 연결되는 캠퍼스 가로와 만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움푹한 여백을 이용하여 배치하였다.
버들골의 완만한 지형위로 드리워진 메인 매스는 서측으로부터의 일사와 캠퍼스로의 소음을 제어함과 동시에, 관악산을 마주하도록 자리잡은 야외무대와 그 앞으로 펼쳐진 객석으로부터 연장된 버들골 전체 영역을 보듬을 수 있게 하였으며, 캠퍼스 중심에서 이어지는 가로의 와 관악산과의 사이에 새로운 장소를 드러내도록 하였다.
카페와 무대지원시설 등의 프로그램이 배치된 메인매스 내부의 공간은 외부의 비정형스킨이 전면의 진입광장과 버들골로 열린 투명한 스크린을 거쳐 내부로 이어지며, 이렇게 만들어진 흐름은 Hall 중앙에 위치한 계단을 통해 2층과 객석을 거쳐 다시 버들골의 지형으로 연결되도록 계획하여 전체적인 순환이 완성되도록 하였다.
우리주변에 늘 있던 것이지만 보이지 않던 것들, 학창시절의 어느 순간에 늘 접하면서도 잘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드러내고자 할 때의 조심스러움으로 접근했던 작업이,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갈 기억 속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남길 기대해 본다.
글 보이드건축 사진 김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