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HOUSE 어쩌다집, SAAI건축 서울시 마을만들기 시범지역에 속한 부지에 지어진 연남동 어쩌다집은 9세대의 소규모 주거공간이 라운지, 동네 부엌, 수직골목의 공용공간으로 엮인 집이다. 건축가는 재료의 디테일보다는 공간 조직의 완성도에 집중해 주거 시장에서 보편화될 수 있는 1인 공동주거 유형을 제시하고자 했다. 건축주는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적당한 연대를 이루며 살기 위해 협동조합주택을 위해 리서치를 진행하고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반응이 좋았지만 모인 사람들의 상황이 맞지 않아, 일반적인 개인투자를 통해 공유주택을 만들기로 했다. 설계과정은 더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공유주거 기획에 경험과 열정을 지닌 서울소셜스탠다드와 함께 리서치를 진행하고 여러 논의를 통해 법규가 허용하는 최대 바닥 면적을 확보하면서도 공간의 풍성함은 간직하고자 했다. 주변의 저층 주거와 어울리기 위해 집의 덩어리를 둘로 나누고 고즈넉한 동네 골목길을 연장하는 외부 계단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1인 가구 주거 형식을 공용공간(라운지, 동네부엌, 수직골목)과 함께 엮어내고자 했다.  2014년 8월 지인들과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30여 명이 모여 입주설명회를 가졌는데,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연남동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가게와 사무실, 원룸과 셰어하우스, 복층주거가 골목과 마당, 라운지를 공유하는 집입니다. 모이고 공유하면 일상이 더 재미있고 풍요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어쩌다집’에 함께 살고 싶습니다.”라는 글로 입주자를 모집했다. 수익을 목적으로 집을 지은 것이 아니므로 임대료는 대지구입과 공사비를 위한 대출금의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정도로 정했고, 각자 원하는 주거형식과 입주일을 기준으로 30, 40대의 디자이너, 편집자, 건축가, 한의사가 함께 살고 있다. 1층의 동네부엌은 어쩌다집 식구들과 이웃주민을 연결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도시형 장터 마르쉐 출점팀이 건강한 이탈리안 가정식과 카페 운영한다. 비가오면 계단에서 비를 맞고, 가게의 영업시간에는 외부계단을 통해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약속되어있다. 우연히 함께 살게 된 식구들은 친구와 이웃들을 초대해 2015년 4월25일에 오픈하우스를 열고 풍요로운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1인가구가 모여 혼자 살지 않는 집이 된 것이다. 글 SAAI건축  사진 조재용
OPENHOUSE 판교 계수나무집과 단풍나무집, 조남호 지난해 오픈하우스를 진행한 계수나무집 옆으로 운중 단풍나무집이 들어섰다. 운중동은 국사봉 아래 저수지에서 피어난 안개가 자주 내려앉으면서 생겨난 지명으로 한국학연구원이 오래전에 터를 잡을 정도로 환경이 좋은 곳이다. 서로 인접해 있는 계수나무집과 단풍나무집은 닮은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내부공간의 구성은 전혀 다르다. 계수나무집은 창고 같이 단순하게 비운 1층과 기능적으로 분절된 2층으로 비교적 정적인 구성이라면, 단풍나무집은 완만한 경사를 활용하면서 지하부터 2층에 이르는 공간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동적인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성을 선택한 이유는 지형보다는 가족들의 특별한 생활방식을 물리적으로 구현 공간이다. 이 집은 주차장을 포함해 330m2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자기 때문에 초등학생 딸과 아들을 위한 방은 따로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외부 활동이 잦은 아빠와 아들, 아이들의 활동공간,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된 욕실 공간 등 가족 네 명의 성향과 세대, 성별에 따라 다양한 활동 조합이 이루어지고, 이에 대응하는 체계를 건축화하는 과정을 통해 만든 집이다. 다른 성격의 공간들은 반 층 차이로 연속적으로 흐르고, 지면에 가까운 층들은 가능한 한 외부공간과 직접 연결되며, 다락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한옥을 닮은 중목구조와 경골목구조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구조 시스템은 연속되는 공간을 보다 섬세하게 분절 또는 통합시키는데 기여한다. 단풍나무는 수형과 나뭇잎, 색깔에서 수려하지만, 다양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편안한 나무이다. 집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분석력과 감각으로 거의 공동설계자 역할을 해오신 건축주 가족에게 어울리는 나무이다. 나무는 사람의 뜻대로 심어졌지만 스스로 성장하며, 오랜 세월 가족과 함께 한다. 글 조남호  사진 윤준환
OPENHOUSE 비앙에트르 (송원아트센터 연계), 조민석 * 10월 13일-18일, 오전 10시-오후 5시 기간 내 자유방문 * 건축가 투어 10월 17일 토요일 오후 3시 30분비앙 에트르는 젊은 프렌치 셰프 오세훈 셰프가 캐주얼 엘레강스 프렌치 퀴진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으로,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송원아트센터의 1,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지하 2~3층은 갤러리, 지하 1층은 주차장으로 쓰인다. 3m 높이 차이가 있는 12m 경사지와 평지가 예각으로 만나는 모퉁이의 삼각형 땅이 건물 형태의 출발점이다. 콘크리트 혹은 석재 타일처럼 보이는 건물 표면은 두꺼운 아연을 입힌 철판을 무작위로 접어 만든 면이다. 건물의 백미는 효율적이면서도 복합적인 구조 설계인데, 설명 없이는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건물과 지형에 스며들어 있다. 좁은 땅에 일곱 대의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곡예'에 가까운 구조 기법이 동원되었다. 삼각형 땅 모서리에 보이는 피라미드 형태가 그 일부인데, 멋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하 전시장으로 통하는 입구이자 창인 동시에 중요한 '기둥'이다. 덕분에 건물이 땅에서 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피라미드를 통해 지하 공간이 들여다보이고, 바로 위 꼭짓점과 만나는 곡면 창을 통해서는 지상 1~2층의 레스토랑 내부가 올려다보인다. 기둥 없이 완전히 개방된 레스토랑에는 넓은 경사 지붕을 따라 설치된 철재 루버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기분 좋은 자연광이 실내를 부드럽게 밝힌다. 송원아트센터의 오픈하우스 기간 중 17일 오후 3시 건축가 가이드투어에 레스토랑의 공간도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 신경섭
OPENSTUDIO 김영준도시건축, 김영준 2015년 10월 13일 2:00PM
OPENHOUSE 반계 윤웅렬의 별서, 김봉렬 반계 윤웅렬 별서는 구한말 윤웅렬이 지은 별장이다. 반계 윤웅렬은 1856년(철종 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으로 군부대신을 지냈다. 1910년 한일합방 후에는 일본 정부에 의해 남작 작위를 받았다. 슬하에는 전주 이씨와의 사이에 좌옹 윤치호, 김정순과의 사이에 남포 윤치왕과 윤치창 3형제를 두었다. 1904년 여름동안 서울지역에 성행하던 성홍열이 10월이 되어도 수그러들지 않자 이를 피해 지내기 위해 창의문 밖 경승지로 손꼽히던 부암동에 조성한 여름 별장이다. 뒤편의 조적조 건물을 별장으로 지었는데, 윤웅렬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의 셋째아들 윤치창이 상속받아 안채 등 한옥 건물을 추가로 조성하여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1977년 서울시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에는 건축물 외에 바위, 연못, 소폭포가 문화재로 추가 지정되면서 별서정원의 주요 구성요소들이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별장의 건축적, 조경적 요소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집이다. 윤웅렬 별장은 1944년까지 셋째아들 윤치창의 소유였으나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1980년대 말부터는 도쿄에 거주하는 집주인이 주로 세를 놓아 집이 망가지는 시초가 되었다. 이후 거의 폐허와 같이 방치되던 이 집을 개인이 소유하게 되면서 보수공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사랑채는 마당을 모두 덮어 거실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원형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다. 건물은 공기가 통하지 않아 썩고 있었으며 마당의 연못은 쓰레기 투기장이 되어버렸다. 이 집을 보수하는데 가장 큰 난제는 서울시 지정문화재라는 점이었다. 문화재는 원형보존을 원칙으로 하므로 생활에 필요한 변형과 상충되었는데 그에 따른 가장 큰 설계의 기준은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편리하게 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단열을 해결해야 했는데, 한식 창호는 기밀성이 떨어져 단열성능이 거의 없으므로 내부에 한식 시스템창호를 새로 개발하여 설치하였다. 원래 이 집에 없던 화장실과 주방 등 위생설비는 건물의 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편리한 위치를 선정하여 실내로 들였다. 안채-사랑채-문간채로 분리된 각 건물을 신발을 신지 않고 연결되도록 하였으며 협소한 건물 규모에 맞는 가구에 대해서도 고민하였다.   글, 사진 온지음 제공
OPENHOUSE 진관사 템플스테이,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템플스테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종교 및 문화행사, 연구 등을 지원하는 시설로, 건축가 조정구 씨는 기존 전각과 풍경, 주변의 자연, 산과 계곡에 어울리는 건축을 고려하고 있다. 지형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규모가 큰 함월당에서 중간 규모의 공덕원, 그리고 작은 집 효림원 등으로 영역을 만들면서 땅의 형국에 맞는 자연스러운 배치를 고려하였다. 함월당에 앉아 주변 자연 풍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창호의 크기와 위치, 기단, 바깥 돌담의 높이 등을 조절하였다. 저층부의 현대적인 건물이 마치 기단처럼 자리하고 그 위로 올린 한옥 구조의 조화가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사진 박영채
OPENHOUSE 세계장신구박물관, 김승회 서울의 북촌은 조선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르는 시간의 깊이가 빚어내는 장소이다. 시간이 박혀있는 도시에 설계를 한다는 일이 결국 시간과 관계를 맺는 일이라면 북촌의 세계장신구박물관 설계 역시 서로 다른 시간을 하나의 장소 안에서 조작하는 일이다. 북촌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2층 양옥을 고쳐 장신구 박물관으로 만드는 일은 북촌이라는 오래된 풍경과 장신구라는 아름다운 전시물이 건축물을 매개로 만나게 하는 즐거운 작업이었다. 장신구박물관이 의식해야 하는 시간의 성좌는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북촌이 이루는 켜이고 또 하나는 세계 곳곳에서 모인 장신구들이 발산하는 켜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 등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지닌 장신구들이 마치 기적처럼 한 장소에 모여 있으며 새로운 시간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기존 주택을 리노베이션하여 새로운 박물관으로 만들면서 각각의 장신구들이 그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전시되는 것이 과제였는데, 그것은 각각의 공간이 연속되어 있으면서도 개별성을 지녀야 함을 의미했다. 다행히 기존 주택이 지닌 공간의 구조는 장신구를 전시하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각각의 분절된 공간마다 독립된 주제를 지닌 장신구가 전시되어야 했으므로 각각의 공간은 고유한 특징을 지니도록 배려했다. 각각의 전시공간은 ‘정원’, ‘숲’, ‘엘도라도’, ‘십자가’ 등의 주제를 지니면서 차이를 만들어내었다. 공간의 크기와 재료, 빛과 촉감 등 여러 방식을 통해 전시 관람 시간을 분절하고 또 이어주었다. 그 결과 작은 공간이지만 관람객은 많은 공간의 주름과 시간의 켜와 경험의 단층을 누리게 되었다. 북촌의 시간과 공간이 지닌 중요한 특징이 각각이 지니고 있는 스케일이라면 북촌에 놓인 집 역시도 그 작은 스케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존의 주택에 새로운 외피를 붙여나가면서 그 볼륨이 지니는 분절들에 고유한 재료를 부여하면서 매스와 재료의 스케일을 획득했다. 그리하여 동판과 적삼목, 유리와 철이 서로 만나면서 각각의 재료가 지는 시간과 공간을 증거하며 ‘하찮은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의미있는 북촌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세계장신구박물관은 성좌와 같은 도시 공간 안에 놓여 있으면서, 다시 그 집속으로 장신구가 이루어내는 새로운 성좌를 품고 있는, 작은 시간이자 작은 공간이다. 글 김승회  사진 강일민
OPENHOUSE 이상범 가옥 동양화가 청전(靑田) 이상범이 살았던 집이자 화실인 이곳은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서울시에서 관리하며 일반인들에게 문을 열고 있어 방문가능하다. ‘청전양식’이라는 자신만의 화법을 전개하던 산수화가인 이상범은 1942년부터 1972년 작고할때까지 누하동 가옥에서 살았으며 배렴과 박노수 등이 배출되었고 그의 전성기 작품이 거의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주택은 ㄱ자 안채와 ㅡ자 행랑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근대 도시한옥이지만 드물게 부엌에 찬마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상의집, 최근 종로구립미술관으로 변신한 박노수 가옥과 함께 서촌의 근대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자료 및 사진 서울시  참고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860&contents_id=76052
OPENHOUSE 성북동 들꽃집, 임형남, 노은주 어떤 분이 성북동 길상사 맞은편 언덕에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들어 갔다가 우연히 20평 남짓한 땅을 하나 샀다. 그 땅에는 아주 낡은 집이 한 채 있었다. 땅을 가득 메우며 들어 앉은 그 집엔 손바닥 만한 마당이 있었다. 작아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던 그 사람은 그 집을 고쳐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네를 조금 둘러보다가 집에서 조금 내려오면 나오는 큰 길 변에 있는 ‘북악수퍼’라는 사실은 동네 구멍가게에 음료수를 마시러 갔다. 그곳에서 음료수를 마시다가 북악수퍼 바로 맞은편에 고래등보다도 크게 집을 짓는 현장에 일하러 온 어떤 분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했다. 이차 저차 해서 저기 보이는 골목길에 집을 하나 샀는데 어떻게 할 지 생각 중이라고 했는데 그 분 (아직까지도 누군지 모른다)이 그럼 가온건축에 한 번 가보라고 이야기했다고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동네 수퍼의 도움으로 집을 한 채 짓게 된 것이다. 그 분은 인터넷을 뒤져보고 적당하다 판단을 해서였는지 우리를 찾아왔다. 물론 우리가 거절할 일은 없었다. 우리는 그 동네를 찾아가봤다. 빨리 지나가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좁을 골목이 구부정하게 큰 길에 슬쩍 꼽사리를 끼고 있었고 골목에서 두 번째 집... 너무 낡아서 손가락으로 튕기면 그냥 주저 앉을 정도로 낡은 집이 한 채, 몇 년 째 사람의 냄새라곤 맡아보지도 못한 허기진 자세로 퀭한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일단을 고치자고 이야기를 했고 이런 저런 보강과 이런저런 칸막이와 방수와 통기와 채광을 하면서 보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집을 고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다시 원점에서부터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하지만 신축을 하기 위해서는 현행의 법에 적합한 안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법에서 허용되는 범위는 한 층의 면적이 7평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층 수도 2층 이상은 불가능 했다. 결국 집의 연면적이 14평인데 그 면적으로는 아무리 단출한 살림을 한다고 해도 턱없이 작았다. 결국 2층 위에 법에서 허용하는 한도내의 다락방을 넣어 2.5층의 집을 짓게 되었다. 여러 가지 공사여건상 가장 적합한 방식은 경골 목구조 방식이었고 집들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가급적 햇빛을 잘 받을 수 있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얇은 집’의 형식으로 지었다. 1층은 거실의 용도로 사용하고 2층은 침실의 용도 그리고 다락 층은 누마루와 서재로 사용하기로 했다. 공사는 쉽지는 않았지만 규모가 워낙 작다 보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좁은 마당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원래 있었던 담장을 살려서 거실에서 바라다보이는 편안한 벽으로 설정하고 그 앞에는 작은 감나무를 한 그루 심어 계절을 느끼고 특히 가을의 주황색을 감상하도록 했고 나머지 모든 빈 곳과 틈새를 마당으로 설정하여 위치에 맞는 들꽃을 50종 정도 열심히 심었다. 그리고 담벼락에는 심었던 들꽃들의 이름과 위치를 적은 ‘들꽃지도’를 그려 넣었다. 마치 꽃씨가 날아와서 느닷없이 메마른 시멘트바닥 틈새에 한 홉도 안 되는 땅을 찾아 꽃을 피우듯이 들꽃처럼 집이 하나 피어 난 것이다. 글 임형남, 노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