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계수나무집과 단풍나무집, 조남호 지난해 오픈하우스를 진행한 계수나무집 옆으로 운중 단풍나무집이 들어섰다. 운중동은 국사봉 아래 저수지에서 피어난 안개가 자주 내려앉으면서 생겨난 지명으로 한국학연구원이 오래전에 터를 잡을 정도로 환경이 좋은 곳이다. 서로 인접해 있는 계수나무집과 단풍나무집은 닮은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내부공간의 구성은 전혀 다르다. 계수나무집은 창고 같이 단순하게 비운 1층과 기능적으로 분절된 2층으로 비교적 정적인 구성이라면, 단풍나무집은 완만한 경사를 활용하면서 지하부터 2층에 이르는 공간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동적인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성을 선택한 이유는 지형보다는 가족들의 특별한 생활방식을 물리적으로 구현 공간이다. 이 집은 주차장을 포함해 330m2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자기 때문에 초등학생 딸과 아들을 위한 방은 따로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외부 활동이 잦은 아빠와 아들, 아이들의 활동공간,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된 욕실 공간 등 가족 네 명의 성향과 세대, 성별에 따라 다양한 활동 조합이 이루어지고, 이에 대응하는 체계를 건축화하는 과정을 통해 만든 집이다. 다른 성격의 공간들은 반 층 차이로 연속적으로 흐르고, 지면에 가까운 층들은 가능한 한 외부공간과 직접 연결되며, 다락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한옥을 닮은 중목구조와 경골목구조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구조 시스템은 연속되는 공간을 보다 섬세하게 분절 또는 통합시키는데 기여한다. 단풍나무는 수형과 나뭇잎, 색깔에서 수려하지만, 다양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편안한 나무이다. 집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분석력과 감각으로 거의 공동설계자 역할을 해오신 건축주 가족에게 어울리는 나무이다. 나무는 사람의 뜻대로 심어졌지만 스스로 성장하며, 오랜 세월 가족과 함께 한다. 글 조남호  사진 윤준환
도천 라일락집 도천 라일락집 터는 도상봉 화백이 기거하며 작품활동을 하던 곳이면서 우리나라 근대 서양화의 산실이기도 하다. 1929년 터를 잡고 30년대 화실과 가정집을 이곳에 꾸려 작품활동을 하면서 당대의 화가 김환기 천경자 등과 교류하였고 초기 학생들을 모아 근대 서양화를 가르쳤던 곳이다.  도상봉 화백이 작고한 이후에도 후손들은 1974년 증축을 한 일반 양식 가옥에서 4대째 살아가고 있었다. 도상봉 손자 도규영 씨는 주변이 밀도가 높은 다가구 다세대 주택으로 급속히 변해가면서 주거 환경이 열악해지고, 70년대 지은 집이 낡고 노후해 이주할 계획을 세우다가 살아온 터의 의미와 중요성을 생각해 원래 집터에 작은 기념관을 겸한 살림집을 짓자는 건축가 정재헌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곳에 신축을 하기로 했다. 성균관 명륜당의 돌담을 마주하고 있는 집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풍경과 주변의 무질서한 주택들 사이에 있다. 건축가는 이 틈에서 간결하고 존재감 없는 배경으로, 주변의 시각적 소음을 제거하는 흡음재로 집을 설계하고자 했는데, 각기 다른 패턴과 재료의 벽돌쌓기로 담백한 건물의 외관을 만들고 있다.  살림집은 ㄱ자형으로 배치하고 도상봉 화백의 기념관을 별채 처럼 배치했지만 마당을 중심으로 내부 공간을 연결했고, 담을 두르는 대신 건물의 배치로 자연스럽게 안마당이 만들어졌다. 도상봉 화백이 즐겨 그리던 명륜동의 담과 라일락 두 그루가 있는 이 집은 터의 내력을 잇고 건축물로 이전의 기억을 잇고자 하는 건축가와 건축주의 노력이 담겨 있다.  사진 박영채
성북동 들꽃집, 임형남, 노은주 어떤 분이 성북동 길상사 맞은편 언덕에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들어 갔다가 우연히 20평 남짓한 땅을 하나 샀다. 그 땅에는 아주 낡은 집이 한 채 있었다. 땅을 가득 메우며 들어 앉은 그 집엔 손바닥 만한 마당이 있었다. 작아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던 그 사람은 그 집을 고쳐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네를 조금 둘러보다가 집에서 조금 내려오면 나오는 큰 길 변에 있는 ‘북악수퍼’라는 사실은 동네 구멍가게에 음료수를 마시러 갔다. 그곳에서 음료수를 마시다가 북악수퍼 바로 맞은편에 고래등보다도 크게 집을 짓는 현장에 일하러 온 어떤 분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했다. 이차 저차 해서 저기 보이는 골목길에 집을 하나 샀는데 어떻게 할 지 생각 중이라고 했는데 그 분 (아직까지도 누군지 모른다)이 그럼 가온건축에 한 번 가보라고 이야기했다고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동네 수퍼의 도움으로 집을 한 채 짓게 된 것이다. 그 분은 인터넷을 뒤져보고 적당하다 판단을 해서였는지 우리를 찾아왔다. 물론 우리가 거절할 일은 없었다. 우리는 그 동네를 찾아가봤다. 빨리 지나가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좁을 골목이 구부정하게 큰 길에 슬쩍 꼽사리를 끼고 있었고 골목에서 두 번째 집... 너무 낡아서 손가락으로 튕기면 그냥 주저 앉을 정도로 낡은 집이 한 채, 몇 년 째 사람의 냄새라곤 맡아보지도 못한 허기진 자세로 퀭한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일단을 고치자고 이야기를 했고 이런 저런 보강과 이런저런 칸막이와 방수와 통기와 채광을 하면서 보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집을 고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다시 원점에서부터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하지만 신축을 하기 위해서는 현행의 법에 적합한 안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법에서 허용되는 범위는 한 층의 면적이 7평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층 수도 2층 이상은 불가능 했다. 결국 집의 연면적이 14평인데 그 면적으로는 아무리 단출한 살림을 한다고 해도 턱없이 작았다. 결국 2층 위에 법에서 허용하는 한도내의 다락방을 넣어 2.5층의 집을 짓게 되었다. 여러 가지 공사여건상 가장 적합한 방식은 경골 목구조 방식이었고 집들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가급적 햇빛을 잘 받을 수 있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얇은 집’의 형식으로 지었다. 1층은 거실의 용도로 사용하고 2층은 침실의 용도 그리고 다락 층은 누마루와 서재로 사용하기로 했다. 공사는 쉽지는 않았지만 규모가 워낙 작다 보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좁은 마당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원래 있었던 담장을 살려서 거실에서 바라다보이는 편안한 벽으로 설정하고 그 앞에는 작은 감나무를 한 그루 심어 계절을 느끼고 특히 가을의 주황색을 감상하도록 했고 나머지 모든 빈 곳과 틈새를 마당으로 설정하여 위치에 맞는 들꽃을 50종 정도 열심히 심었다. 그리고 담벼락에는 심었던 들꽃들의 이름과 위치를 적은 ‘들꽃지도’를 그려 넣었다. 마치 꽃씨가 날아와서 느닷없이 메마른 시멘트바닥 틈새에 한 홉도 안 되는 땅을 찾아 꽃을 피우듯이 들꽃처럼 집이 하나 피어 난 것이다. 글 임형남, 노은주